장례를 치르고 석 달 안에 한정승인까지 마쳤어도, 어머니와 사는 아버지 명의 집이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을 겁니다. 한정승인을 해도 집은 아버지 빚을 갚는 데 쓰이는 상속재산입니다. 그래서 집을 팔아야 빚이 정리되는 상황이라면 결국 경매로 넘어갑니다.
아버지가 빚을 남기고 돌아가셔서 한정승인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사시는 아버지 명의 집에 계속 살 수 있을까요?
다만 경매에서 집을 산 사람이 대금을 다 낼 때까지는 가족이 소유자로서 그 집에 살 수 있습니다. 결론은 두 가지에 달려 있습니다. 집에 근저당이 잡혀 있는지, 그리고 집 말고 빚을 갚을 재산이 있는지입니다.
한정승인 뒤 아버지 집 소유권
한정승인을 해도 집의 소유권은 가족에게 넘어옵니다. 민법 제1028조는 상속받은 재산의 한도에서 빚을 갚는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하게 합니다. 그래서 집은 가족 소유가 되면서도 채권자들이 빚을 받아 갈 재산으로 묶이는 것이죠.
한정승인은 아버지의 빚을 물려받되, 갚을 책임을 아버지가 남긴 재산 범위로 끊는 제도입니다. 빚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채권자가 상속인이 원래 가진 월급·예금·집, 곧 고유재산에 손댈 수 없게 될 뿐입니다.
한정승인을 해도 아버지 집은 빚을 갚는 데 쓰이는 상속재산입니다. 지켜지는 것은 가족이 원래 가진 월급·예금 같은 고유재산입니다.
그 집에 계속 사는 일 자체는 한정승인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거주는 상속재산을 팔거나 넘기는 처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정승인을 신고하기 전이든 법원이 수리한 뒤든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살아 온 집이니 세입자처럼 보호받으리라 기대하기 쉬운데요, 가족은 세입자가 아니라 소유자입니다. 그래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소액 임차인 최우선변제를 받을 수 없고, 경매 대금은 채권자들 몫이 됩니다.
근저당 잡힌 집과 은행 임의경매
집에 아버지 대출의 근저당이 잡혀 있다면, 은행은 한정승인과 상관없이 경매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1034조 제1항 단서는 상속인이 빚을 나눠 갚을 때도 우선권 있는 채권자의 권리를 해치지 못하게 정합니다. 그래서 은행은 가족의 청산 일정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장례를 치르던 그때는 아버지 대출 이자가 밀리는 것까지 챙기기 어렵습니다. 은행은 보통 연체가 이어지면 남은 대출을 한꺼번에 갚으라고 통지한 뒤 법원에 임의경매를 신청합니다. 이를 위해 은행이 가족 대신 상속등기부터 해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이 신청한 적 없는 상속등기가 등기부에 보인다면 경매 준비의 신호로 보면 됩니다.
지금 은행 통지서를 들고, 어머니 통장으로라도 이자를 메워야 하나 고민하고 계실지 모릅니다. 가족 돈으로 이자를 내는 것이 막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돈은 한정승인이 지켜 준 고유재산에서 나갑니다. 집값이 빚 전체보다 낮다면 이자를 메워도 경매 시점만 늦출 뿐이거든요.
부모 공동명의 집이라면 상속재산은 아버지 지분뿐입니다. 어머니가 원래 가진 지분에는 아버지의 일반 채권자가 손댈 수 없습니다. 다만 근저당이 집 전체에 잡혀 있다면 어머니 지분도 경매를 피하지 못합니다.
이 설명은 어머니와 자녀 모두 기한 안에 한정승인을 했다는 전제입니다. 누군가 상속이 시작된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민법 제1026조 제2호에 따라 그 사람은 단순승인한 것으로 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 대출에 보증을 섰다면, 그 보증 빚은 한정승인과 무관하게 어머니의 빚으로 남습니다.
채권신고 공고와 배당변제 순서
근저당이 없는 집도 그대로 남지는 않습니다.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이 아버지 재산을 정리해 채권자들에게 나눠 주는 청산을 맡습니다. 그 순서는 민법이 정해 두었습니다.
1. 공고: 한정승인을 한 날부터 5일 안에, 2개월 이상의 기간을 정해 채권을 신고하라고 공고합니다. 알고 있는 채권자에게는 따로 알립니다(민법 제1032조).
2. 신고 기간: 이 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어느 채권자의 변제 요구도 거절할 수 있습니다(제1033조).
3. 배당변제: 기간이 끝나면 근저당·체납 세금처럼 우선권 있는 채권부터 갚고, 나머지를 일반 채권자에게 채권액 비율로 나눕니다(제1034조 제1항).
4. 늦은 신고: 기간 안에 신고하지 않았고 상속인도 몰랐던 채권자는 남은 재산이 있을 때만 받습니다(제1039조).
숫자를 넣어 계산해 봅시다. 아버지 재산은 시세 3억 원짜리 집과 예금 1천만 원이고, 빚은 은행 근저당 대출 2억 4천만 원, 카드사 1억 원, 지인 1억 원이라고 가정합니다. 경매비용은 빼고 보면, 집이 2억 8천만 원에 팔릴 때 은행이 먼저 2억 4천만 원을 가져갑니다.
남은 4천만 원에 예금 1천만 원을 합한 5천만 원은 카드사와 지인이 채권액 비율대로 2,500만 원씩 받습니다. 못 받은 1억 5천만 원은 가족의 고유재산으로 갚지 않아도 됩니다.
집을 지키고 싶은 가족에게는 야속한 계산이죠.
공고를 빠뜨리거나 기간이 끝나기 전에 한 채권자에게만 먼저 갚으면, 다른 채권자가 덜 받은 만큼 상속인이 물어 줘야 합니다. 민법 제1038조 제1항이 정한 손해배상 책임입니다. 이 책임은 한정승인의 한도와 별개로 상속인 개인이 집니다.
상속재산 형식적 경매와 임의 매각
집 말고는 빚을 갚을 상속재산이 없다면, 근저당이 없어도 집은 결국 경매로 팔립니다. 민법 제1037조가 변제를 위한 상속재산 매각은 민사집행법에 따른 경매로 하도록 정하기 때문입니다. 빚을 나누려고 상속재산을 돈으로 바꾸는 이 경매를 실무에서는 형식적 경매라고 부릅니다.
근저당이 없어도 집 말고 빚을 갚을 재산이 없다면 집은 경매로 팔립니다. 가족이 그 집에 살 수 있는 것은 낙찰자가 대금을 다 낼 때까지입니다.
경매 대신 아는 사람에게 집을 팔고 그 돈을 일부 채권자에게만 주면 앞의 제1038조 책임이 생깁니다. 민법 제1026조 제3호는 한정승인 뒤 상속재산을 숨기거나 부정하게 써 버린 경우를 단순승인으로 봅니다. 법원은 한정승인 뒤의 처분이 이 부정소비에 해당하는지를 따로 따집니다. 매각대금을 생활비로 써 버렸다면 해당할 여지가 커지고, 단순승인이 되면 자기 상속분만큼의 빚을 고유재산으로도 갚아야 합니다.
집을 지킬 수 있는 경우는 좁습니다. 집 말고 다른 상속재산으로 빚을 다 갚을 수 있다면 집은 팔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상속인이 아닌 친척이 경매에서 집을 낙찰받고, 가족이 그 집에 계속 사는 방식이 남습니다. 상속인이 아닌 친척의 입찰을 막는 규정은 없거든요.
공고 문안을 신문에 내는 일, 알고 있는 은행·카드사에 심판문 사본을 보내 채권신고를 요청하는 일은 가족이 직접 해도 됩니다. 채권자가 두세 곳이고 우선권 있는 채권이 근저당 하나라면, 배당 계산도 앞의 예처럼 사칙연산으로 끝납니다. 체납 세금과 여러 담보권이 겹치면 계산의 전제부터 달라집니다.
채권자 소송과 한정승인 항변
공고를 냈어도 카드사나 대부업체가 상속인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소장을 받으면 답변서에 한정승인 사실을 적어 심판문과 함께 내면 됩니다. 그러면 법원은 상속재산의 한도에서 갚으라는 단서를 붙여 판결합니다. 이 판결로 채권자는 상속재산인 집에는 집행할 수 있지만, 가족의 월급이나 예금에는 손댈 수 없습니다.
소송이 걸린 줄 모르고 지나가 판결이 확정됐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정승인 사실을 주장하지 않아 단서 없는 판결이 확정됐더라도, 법원은 그 뒤 판결의 집행을 막아 달라는 소송(청구이의의 소)에서 한정승인을 내세울 수 있다고 봅니다. 상속포기는 다릅니다. 포기 사실을 주장하지 않은 채 판결이 확정되면, 법원은 나중에 포기를 들어 다투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같은 가정법원에 낸 신고인데, 판결 뒤의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경매 뒤 인도명령과 양도소득세
경매에서 집을 산 사람이 매각대금을 다 내면 소유권이 넘어가고, 소유자였던 가족도 집을 비워야 합니다. 민사집행법 제135조에 따라 매수인은 대금을 다 낸 때 소유권을 얻습니다. 또 제136조에 따라 그 뒤 6개월 안에 신청하면, 집을 넘기라는 법원의 인도명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망부터 집을 비우기까지 여러 단계가 이어집니다. 한정승인 신고는 상속이 시작된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하고, 법원의 수리 심판까지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며, 채권신고 기간은 2개월 이상입니다. 경매는 신청부터 대금 납부까지 수개월에서 1년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은행의 임의경매는 이 일정과 따로 움직이지만, 어느 쪽이든 대금 납부 전까지 가족은 그 집에서 지낼 수 있을 겁니다.
경매가 끝난 뒤에는 세금 문제가 남습니다. 법원은 한정승인한 상속재산이 경매로 팔려도 상속인에게 양도소득세 납세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다만 상속받은 집의 취득가액은 상속개시 당시 평가액으로 잡힙니다. 그래서 사망 후 오래지 않아 시세 이하로 팔리면 차익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리하면, 근저당이 있으면 은행 경매로, 다른 상속재산이 없으면 형식적 경매로 집이 팔리고, 가족은 낙찰자가 대금을 다 낼 때까지 그 집에 살 수 있습니다.
심판문을 받아 든 지 아직 며칠 안 됐다면, 이 글에 나온 기한 가운데 남은 시간이 가장 짧은 것은 민법 제1032조 제1항의 공고 5일입니다. 실무에서는 이 닷새를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 아니라 한정승인 수리 심판을 송달받은 날부터 셉니다. 심판문을 받은 날짜를 확인하고, 그날은 빼고 다음 날부터 닷새를 세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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