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판결 날마다 성적표를 받는 직업입니다. 유죄면 낙제, 무죄면 수석합격 같은 기분이 드는 거죠. 그런데 변호사가 무죄를 주장한다고 해서 판사가 늘 무죄를 선고하는 건 아닙니다. '당연히 무죄겠지' 싶은 사건에서도 기소가 되고, 1심 유죄가 나고, 항소심에 간 다음에야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기분이 어떠냐고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막 허탈하거나 분이 폭발하는 그런 단선적인 감정이 아니에요. 그냥... 마음이 멍합니다. 내가 한 선택이 의뢰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자책, 내가 뭔가 더 했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그리고 여전히 '이건 무죄야'라는 확신 사이에서 마음이 요동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겪은 무죄 관련 사건들 중 기억에 남는 일들을 차근차근 말씀드리려 합니다.
무죄가 너무 확실해 보여 혼자 싸워보라 했던 사건
한 대학생 의뢰인이 통신매체이용음란(통매음) 혐의로 상담을 왔습니다. 기록을 보자마자 저는 '이건 100% 혐의없음'이라고 판단했죠. 부모님께 말도 못 하고 아르바이트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의뢰인을 보며, 변호사 비용이 부담스러울 거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의견서 틀과 진술 방향을 알려주며 "혼자 한번 해보세요"라고 했죠.
안일했어요. 수사기관은 그 친구의 경험 없는 주장을 보고 기소를 해버렸습니다.
결국 나중에 의뢰인이 다시 찾아와 "역부족인 것 같다"며 선임을 요청했고, 재판에서 1심 무죄가 났습니다. 항소심, 대법원까지 갔고 결국 무죄 확정을 받았죠. 문제는 수사단계에서 제가 직접 선임했다면 그 긴 시간이 없었을 거란 겁니다. 그걸 의뢰인의 삶에서 빼앗은 느낌이었어요. 무죄가 나와도 씁쓸했던 사건입니다.
무죄 주장만 했는데 유죄가 난 사건
절도 혐의 사건에서 의뢰인이 너무 억울해했습니다. 기록을 들여다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더군요. 현장을 따라잡을 수 없는 거리, 시간, 동선 분석까지 다 해서 그것이 알고 싶다 수준의 재현 영상을 만들었죠. 그걸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그런데 유죄가 나왔어요. 구속까지 됐죠.
그때 의뢰인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무죄 주장을 다 해줬고, 자기가 주장하고 싶었던 내용을 법정에서 다 풀어냈다는 점에서 만족했던 겁니다. 억울하지만, 억울함을 세상에 보여준 데서 위안을 삼은 거죠. 전 그 말에 울컥했습니다.
무죄 주장, 기적처럼 통했던 항소심
한 사건은 1심 유죄가 나고 집행유예가 선고된 후 항소심에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무죄 주장 안 해도 되니 합의만 해달라"고 했죠. 무죄 주장이 더 비싸기도 하고, 항소심에서 괜히 구속될까봐 무서워서였습니다.
하지만 기록을 보니 아무리 봐도 증거가 없었습니다. 설득했습니다. 결국 무죄 주장으로 방향을 틀고 항소심 무죄, 상고심에서도 무죄 확정. 의뢰인은 그제야 "그때 주장해줘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죠.
국민참여재판, 만장일치 무죄
아직도 소름이 돋는 사건입니다. 성범죄 혐의였고, 배심원 9명 전원이 무죄 의견을 냈습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재판이 밤 10시에 끝났습니다. 그날 저녁 밥을 제대로 못 먹고, 계속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연락을 기다렸죠.
법정 연락이 왔을 때, 선고를 기다리던 의뢰인의 표정, 그리고 무죄 선고 순간의 눈물, 손을 맞잡고 인사하던 그 장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습니다. 그런 짜릿함은 매번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만큼 기쁘기도 합니다.
무죄를 주장하지 못한 사건들
반대로 의뢰인이 무죄임에도 무죄 주장을 못 하게 되는 사건도 있어요. 구속이 무서워서, 피해자 눈치가 보여서, 그냥 인정해버리는 경우입니다. 경찰도 "왜 자꾸 인정하시죠?"라고 의아해하고, 검사도 피해자를 한 번 더 조사하려 하는데도요. 그럴 때 저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주장할 수도 있는데, 상대가 그럴 의지가 없을 때의 무력감이란...
무죄 주장, 그 자체로 감정 롤러코스터입니다
무죄 주장 그 자체로 감정 롤러코스터입니다. 이겨도 울컥하고, 져도 울컥합니다. 특히 저는, 무죄 주장 사건에선 늘 전날 잠을 설칩니다. 입시 발표 기다리듯 긴장되고, 판사님이 들어오실 때 숨이 턱 막히기도 해요. 결과가 좋으면 함께 환호할 수 있죠. 반대로 지면 깊은 자책이 따라옵니다.
하지만 저는 늘 최선을 다합니다. 무죄라는 확신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주장합니다.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의뢰인이 후회하지 않도록. 그게 제 역할이고, 제가 이 직업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1심에서 유죄가 나왔는데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을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실제로 저도 1심 유죄 후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사건을 여러 건 경험했습니다. 다만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으려면 1심에서 다루지 못했던 새로운 증거나 논리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록 검토와 전략 수립이 핵심입니다.
Q. 수사단계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왜 중요한가요?
A. 수사단계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기소로 이어지고, 그 이후 재판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위 사건처럼 '혐의없음'이 명백한 사건도 수사단계 대응 실패로 기소된 사례가 있습니다. 초기 대응이 전체 사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Q. 무죄 주장을 하면 형량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A. 무죄 주장 자체가 형량을 높이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다만 반성의 태도가 없다는 점이 양형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의뢰인들이 걱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무죄인 사건에서 무죄 주장을 포기하는 것은 더 큰 손해입니다. 사건별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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