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석 달쯤 지나 경찰서에서 출석 요구 연락을 받았다고 해 봅시다. 회사가 재직 2년 동안의 법인카드 결제 가운데 주말 식당과 마트 결제를 골라 업무상 횡령으로 고소한 사건입니다. 대표가 알았다는 사실만으로 죄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허락이 한도와 용도를 정할 만큼 구체적이었고 사용 내역을 숨긴 적이 없다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볼 근거가 생깁니다.
퇴사하고 나서 회사가 제가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썼다며 횡령으로 고소했습니다. 대표도 알고 있던 일인데 처벌받나요?
법인카드 개인 결제 두 사례
같은 금액을 같은 기간 썼더라도 결론은 반대로 나올 수 있습니다. 차이는 금액이 아니라 결제를 둘러싼 기록에 있습니다. 아래 두 팀장의 이야기는 가정입니다.
영업팀장 A는 입사할 때 대표에게서 "팀장 수당 대신 법인카드를 월 50만 원까지 개인 용도로 써도 된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A는 2년 동안 매달 가족 외식에 그만큼 썼고, 정산서에 '개인 사용(대표 승인분)'이라고 적어 대표 결재를 받았습니다. 경리 담당자는 이 돈을 복리후생비로 처리했습니다. 50만 원씩 24개월이니 모두 1,200만 원입니다.
팀장 B도 같은 2년 동안 1,200만 원을 썼습니다. 그런데 B는 가족 외식 영수증마다 '거래처 미팅'이라고 적어 정산했고, 회사는 이 돈을 접대비로 처리했습니다. B가 기억하는 대표의 허락은 회식 자리에서 들은 "카드 좀 써도 돼"라는 한마디입니다.
A의 경우 수사기관이 혐의없음으로 판단할 여지가 큽니다. B는 대표가 그 말을 했다고 인정하더라도 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쪽에 서 있습니다.
두 사람의 카드 명세서만 놓고 보면 똑같아 보일 겁니다.
대표 승인이 인정되는 세 가지 조건
두 사례의 차이는 허락의 구체성, 내역을 숨겼는지, 회사 장부의 처리 세 가지입니다. 메시지와 정산서와 회계 계정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승인 주장은 힘을 얻습니다.
대표가 알았다는 사실만으로 죄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한도와 용도를 정한 허락이었는지, 내역을 숨겼는지, 장부에 어떻게 잡혔는지가 갈림길입니다.
첫째는 허락의 구체성입니다. 한도와 용도, 기간을 정한 허락은 회사가 보상의 하나로 카드 사용을 열어 주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써도 돼" 한마디로는 야근 식사를 말한 것인지 가족 외식까지 포함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퇴사 뒤 대표가 진술을 바꾸면 그 한마디로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둘째는 내역을 숨겼는지입니다. B가 영수증에 '거래처 미팅'이라고 쓴 것은 회사가 실제 용도를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정황으로 읽힙니다. 대표가 알고 있었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부딪치죠. 법원은 회사 돈을 쓴 사람이 그 쓰임을 납득할 만한 자료로 설명하지 못하면 개인적으로 써 버린 것으로 추단하는 흐름을 보입니다.
셋째는 회계 처리입니다. A의 결제가 복리후생비로 잡혔다는 것은 회사 장부가 스스로 그 돈을 직원 보상으로 기록했다는 뜻입니다. B의 결제가 접대비로 잡힌 것은 반대로, 회사가 업무 지출로 알고 대금을 치렀다는 고소 내용을 뒷받침합니다.
업무상 횡령과 배임의 차이와 형량
고소장에 횡령이라고 적혀 있어도 법인카드 개인 결제는 배임으로 다뤄지는 일이 많고, 어느 쪽이든 형량 범위는 같습니다. 죄명은 고소장 문구대로 고정되지 않고, 수사 과정에서 사실관계에 맞춰 정해집니다.
형법 제355조는 두 죄를 나눕니다. 횡령은 맡아 둔 회사 돈이나 물건을 자기 것처럼 써 버리는 것이고(제1항), 배임은 회사 일을 맡은 사람이 임무를 어겨 자기나 남이 이익을 얻게 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것입니다(제2항). 법인카드 결제는 회사 돈을 꺼낸 것이 아니라 카드 대금을 회사가 떠안게 한 구조여서 배임에 가깝습니다. 회사 계좌의 돈을 직접 옮긴 부분이 섞였다면 그 부분은 횡령이 문제 됩니다.
직원이 업무로 받은 카드를 썼으므로 형법 제356조의 업무상 횡령·배임이 적용되고, 법정형은 둘 다 10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입니다. 이득액이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무거워집니다. 공소시효는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3호에 따라 10년이어서, 퇴사 뒤 몇 년이 지난 고소도 가능합니다.
두 죄 모두 회사가 허락하지 않은 줄 알면서 자기 이익을 위해 쓰려는 의사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횡령에서는 이를 불법영득의사, 배임에서는 배임의 고의라고 부릅니다. 대표의 허락을 따지는 이유도 결국 이 의사가 있었는지를 보려는 것이거든요.
회사 관행 주장과 대표 동의의 한계
"다들 그렇게 썼다"는 말은 그것만으로 처벌을 막지 못합니다. 법원은 잘못된 관행이 오래 이어졌다는 사정만으로 불법영득의사가 없어진다고 보지 않습니다. 관행이 의미를 갖는 것은 회사가 알고 정한 보상 방식이었다는 증거로 쓰일 때입니다.
"다들 그렇게 썼다"는 말은 그것만으로 처벌을 막지 못합니다. 회사가 알고 허용했다는 증거가 될 때 의미가 생깁니다.
같은 직급 직원들이 비슷한 한도로 개인 결제를 했고, 경영진이 매달 내역을 보고도 문제 삼지 않았다면 관행은 회사의 허용을 보여 줍니다. 반대로 다른 직원들도 몰래 썼다는 사실은 위법한 결제가 여럿이었다는 뜻에 그칩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억울한 이야기죠.
대표의 허락이 있어도 죄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원은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면 대표이사나 주주가 동의했더라도 배임죄 성립에 영향이 없다고 봅니다. 회사는 대표와 별개의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와 짜고 정상적인 보상으로 볼 수 없는 규모의 돈을 빼냈다면, 그 허락은 면책 사유가 아니라 대표까지 공범으로 묶는 사정이 됩니다.
직원이 아니라 등기 이사였다면 사정이 다릅니다. 상법 제388조는 이사의 보수를 정관이나 주주총회 결의로 정하게 하므로, 카드 사용이 보수였다면 대표 한 사람의 허락보다 그 절차를 거쳤는지가 먼저 문제 됩니다.
고소 이후 경찰 조사 순서
고소장이 접수되면 경찰이 사건을 맡고, 대체로 아래 순서로 진행됩니다. 기간은 사건마다 다르지만 경찰 단계에서만 몇 달이 걸리는 일이 흔합니다.
1. 고소인 조사: 회사 담당자가 먼저 진술하고 카드 명세서와 회계자료를 냅니다. 고소당한 쪽은 이 단계를 모른 채 지나가기 쉽습니다.
2. 출석 요구: 경찰이 전화나 문자로 조사 날짜를 잡고, 날짜는 조율할 수 있습니다.
3. 피의자 조사: 결제 건마다 용도를 묻고, 필요하면 대표나 경리 담당자를 참고인으로 부르거나 대질합니다.
4. 경찰 결정: 혐의가 있다고 보면 검찰에 송치하고, 아니면 불송치 결정을 합니다. 회사는 불송치 통지를 받고 형사소송법 제245조의7에 따라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그러면 사건은 검찰로 넘어갑니다.
5. 검찰 처분: 검찰이 기소할지, 기소유예나 혐의없음으로 끝낼지 정합니다.
회사는 보통 카드 명세서에서 주말·심야·가족 동반으로 보이는 결제만 골라 표로 만들어 냅니다. 퇴직금이나 이직 문제로 다투던 중에 고소가 들어오는 일도 적지 않은데요, 그 과정에서 대표가 "승인한 적 없다"고 진술하기도 합니다. 수사기관은 고소의 동기보다 결제 하나하나의 성격을 봅니다.
아마 지금 예전 카드 명세서를 다시 내려받아 한 줄씩 넘겨 보고 계실 겁니다. 그 작업은 결제를 업무에 쓴 것, 허락 범위 안에서 개인적으로 쓴 것, 설명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눌 때 쓸모가 생깁니다. 첫 조사에서 흔한 실수는 "대표도 알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허락받았는지는 대지 못하는 것입니다.
카드값 변제와 고소 취소의 효과
돈을 돌려주면 끝나느냐는 질문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업무상 횡령·배임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어서, 회사가 고소를 취소해도 수사는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변제와 합의는 이미 성립한 죄를 없애지 못하고, 검사의 기소유예 판단이나 법원의 형량에서 참작됩니다.
허락을 주장하면서 일부를 갚으면 앞뒤가 맞지 않느냐는 물음도 따라옵니다. 허락 범위를 넘은 결제만 골라 갚는 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A가 어느 달 70만 원을 썼다면 한도를 넘은 20만 원이 그 대상입니다.
출석 요구가 아직 없고 회사가 내용증명으로 반환만 요구하는 단계라면, 허락받은 결제까지 한꺼번에 송금하거나 "제가 잘못 썼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 송금 기록과 문자는 나중에 몰래 썼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자료로 쓰입니다.
정리하면, 법인카드 개인 결제는 배임으로 다뤄지는 일이 많고, 처벌을 가르는 것은 허락의 구체성과 기록입니다. 고소가 취소돼도 수사는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대표도 알던 일'은 억울함을 담은 말이었습니다. 이제 그 말은 메시지와 정산서와 장부로 보여 줘야 할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전 대화방에서 대표가 법인카드 이야기를 꺼낸 날의 메시지를 열어, 거기에 한도와 용도가 적혀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053-754-9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