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에서 출석요구서를 받은 다음 날, 변호사 사무실 전화번호를 눌렀다가 끊는 분들이 있습니다. 조사받기도 전에 변호인부터 선임하면 담당 경찰관이 '뭔가 숨기는 게 있나 보다'라고 여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이 걱정은 실제 형사절차가 작동하는 방식과 다릅니다. 변호인 동석이나 진술거부권 행사는 유·무죄를 가르는 자료가 되지 않고, 실제로 결론을 가르는 것은 진술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줄기를 유지했는가입니다.
진술거부권을 쓰면 죄를 인정하는 셈이 될까
헌법 제12조 제2항은 누구든지 형사상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이를 구체화한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은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신문하기 전에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사실과 그 행사가 불이익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조사받는 사람이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조서에 '진술거부'라고만 기재될 뿐, 그 뒤에 다른 의미가 붙지 않습니다.
법원이 유죄를 인정하려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로 혐의를 증명해야 하고, 형사소송법 제307조와 제308조는 이 증명이 증거에 의해야 하며 그 판단은 법관의 자유심증에 맡긴다고 정합니다. 침묵은 그 증명의 공백을 메워주는 자료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고 조사가 끝나지는 않습니다. 수사기관은 CCTV, 통신기록, 참고인 진술로 사실관계를 구성해 나가고, 침묵 이후에 나온 진술이 앞뒤가 다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결론이 갈린 두 상황을 놓아보면
같은 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는 두 사람을 가정해보겠습니다. A씨는 변호인과 사전에 사실관계를 정리한 뒤 출석해, 처음부터 '상대가 먼저 멱살을 잡아 밀쳐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이후 검찰 조사와 재판에서도 같은 내용을 유지합니다. B씨는 변호인 없이 조사에 나가 당황한 나머지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가, 다음 조사에서는 '사실은 내가 먼저 손을 댔다'고 말을 바꾸고, 재판에서 다시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진술합니다.
변호인 유무만 놓고 보면 두 사람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차이는 변호인 선임 여부가 아니라 진술의 일관성입니다. A씨의 진술은 최초 조사부터 재판까지 하나의 줄기로 이어져 신빙성을 인정받을 여지가 커지고, B씨의 진술은 세 번 모두 결이 달라 어느 것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자료가 됩니다. 법원은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 진술이 처음 나온 시점과 이후 변경된 경위를 함께 보는데, 변호인이 있었는지는 이 판단에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변호인 선임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로는 '동석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진술이 흔들리지 않게 만든다는 기능입니다. 조사는 보통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경찰, 검찰, 법원으로 이어지는데, 그 사이 기억이 흐려지거나 질문의 각도가 달라지면 같은 사실도 다르게 말하기 쉽습니다. 미리 사실관계를 정리해 둔 사람은 두 번째, 세 번째 조사에서도 비슷한 표현을 쓸 확률이 높아지고, 그 결과가 앞서 본 A씨의 사례입니다.
변호인 참여가 조사를 실제로 어떻게 바꾸나
형사소송법 제243조의2는 피의자나 그 변호인이 신문에 변호인을 참여하게 해 달라고 신청하면,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변호인은 신문 중 부당한 신문 방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신문이 끝난 뒤 의견을 진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신문 도중 답변을 대신하거나 유도할 수는 없고, 조서에는 변호인이 참여했다는 사실만 기재될 뿐 그 내용은 남지 않습니다. 참여 여부는 경찰관 재량으로 조서 평가에 반영되는 항목이 아니라, 절차가 적법하게 진행되었는지를 담보하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수사기관은 변호인 선임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경찰관 입장에서 변호인 선임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접수되는 사건 상당수에서 피의자와 참고인이 변호인을 대동하거나 사전 상담을 거치고, 조사 실무에서 이를 혐의의 방증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술이 정리되어 있어 조사 시간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참고인 신분으로 단순히 사실관계를 확인받는 자리이고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라면, 출석요구서를 받자마자 변호인부터 선임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출석요구서에 적힌 신분이 참고인인지 피의자인지, 혐의 내용이 무엇인지 먼저 확인한 뒤 상담 여부를 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면 언제 상담부터 받아야 하나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변호인 선임 자체가 불리하지 않다면, 아예 모든 조사에 변호인을 데려가야 하는 걸까요. 신분이 피의자로 특정되어 있거나 고소인의 진술과 다투는 지점이 있는 사건이라면, 조사 전에 한 번은 상담을 받아두는 편이 진술의 일관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조사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처음 출석요구서를 받아 든 분이라면, 이 흔들림이 남 일 같지 않을 겁니다.
조사 당일 즉석에서 질문에 답하다 보면 표현이 흔들리기 쉬운데, 그 흔들림이 이후 조서와 재판 진술 사이의 간극으로 남습니다. 사실관계 자체는 맞는데 표현 방식만 매번 달라지는 경우가 실제로 많습니다.
조사 이후에도 남는 기록
경찰 조사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나 진술조서는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뒤에도, 재판이 열린 뒤에도 그대로 남아 비교 대상이 됩니다. 경찰 조사부터 검찰 송치까지는 사안에 따라 통상 1~2개월이 걸리고, 다투는 쟁점이 많거나 관련자가 여러 명이면 6개월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그 사이 진술을 뒤집으면 왜 바뀌었는지를 새로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조서는 한번 작성되면 수정이 어렵고, 서명 전에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조사 당일뿐입니다. 그래서 변호인과 상담하는 목적은 조사를 피하는 데 있지 않고, 그 하루의 기록이 이후 몇 달, 몇 년의 절차에서 그대로 다시 읽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데 있습니다.
지금 손에 든 출석요구서가 참고인 조사인지 피의자 조사인지, 사실관계 중 다투는 부분이 있는지, 이미 한 진술이 있다면 그것과 오늘 하려는 말이 같은 줄기인지, 이 세 가지를 먼저 대입해보면 상담이 필요한 지점이 보입니다. 변호인 선임 시점이 조사 전이든 후든, 판단은 언제나 그 진술이 얼마나 한결같은가에서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