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서에 서명하고 합의금도 건넸는데, 경찰이 처벌불원서를 따로 받아 오라고 하거나 상대방이 고소를 취하했다는데도 사건 연락이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류 이름이 둘이니 무엇이 효력을 갖는지 헷갈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서류의 이름보다 죄명이 효과를 정합니다.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죄라면 서류 한 장으로 사건이 끝나고, 그렇지 않은 죄라면 서류가 있어도 사건은 계속되며 형을 정할 때 참작되는 데 그칩니다.
두 서류는 거두는 대상이 다릅니다
고소 취하서는 피해자가 이미 수사기관에 낸 고소를 거두는 서류이고, 처벌불원서는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히는 서류입니다. 법 조문은 앞의 것을 '고소 취소', 뒤의 것을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 의사표시'라고 부릅니다.
둘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습니다. 취하서는 고소를 낸 사람만 쓸 수 있어서, 제3자의 신고로 시작된 사건에는 취하할 고소 자체가 없습니다. 처벌불원서는 고소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자가 자기 뜻을 밝히는 서류입니다.
합의서는 이 둘과 성격이 다릅니다. 합의금 액수, 지급 시기, 추가 청구 포기 같은 당사자 사이의 약속을 적은 문서이고, 수사기관이 처분을 정할 때 직접 보는 것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는지에 관한 의사입니다.
서류가 세 가지나 되니, 어느 서류에 어떤 문장이 들어가 있는지가 곧 쟁점이 됩니다.
같은 서류도 죄명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효과를 가르는 분류는 세 가지입니다. 반의사불벌죄, 친고죄, 그리고 둘 다 아닌 일반 범죄입니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면 검사가 기소할 수 없는 죄입니다. 폭행죄는 형법 제260조 제3항, 협박죄는 제283조 제3항, 명예훼손죄는 제312조 제2항이 이렇게 정하고 있어 처벌불원서가 곧바로 효력을 냅니다. 가령 말다툼 끝에 상대를 밀친 폭행 사건에서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내면, 수사 단계에서는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보내지 않고 끝내거나 검사가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합니다.
친고죄는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는 죄이고, 모욕죄가 대표적입니다(형법 제311조, 제312조 제1항). 여기서는 고소 취하서가 핵심 서류가 됩니다. 고소를 취소하면 기소할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미 기소돼 재판 중이어도 같습니다. 재판부는 고소 취소나 처벌불원 의사가 확인되면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5호·제6호에 따라 판결로 공소를 기각합니다.
서류 제목보다 피해자의 뜻이 분명한지가 먼저 보입니다
반의사불벌죄에서 취하서만 받고 처벌불원서는 받지 못했다고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표시했는지를 보기 때문에, 서류 이름이 달라도 그 취지가 드러나면 처벌불원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합의서 사본과 입금 내역을 번갈아 보며 서류 이름을 검색하고 계실 텐데, 확인할 순서는 서류가 아니라 죄명입니다. 서류가 손에 없어도 죄명 확인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서류에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라고만 있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말이 없으면, 수사기관이 피해자에게 의사를 다시 묻는 일이 있습니다. 처벌불원 의사는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밝혀야 하므로, 가해자 쪽이 써 둔 문구에 서명만 받은 서류는 나중에 진의를 두고 다퉈질 수 있습니다.
죄명이 중간에 바뀔 수 있다는 점도 확인해야 합니다. 폭행으로 입건된 사건에 상해 진단서가 제출되면 죄명이 상해로 바뀌어 처벌불원서만으로는 사건이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류를 쓰기 전에 담당 수사관에게 현재 적용된 죄명을 묻는 것이 순서입니다.
한번 낸 서류는 거둘 수 없고, 낼 수 있는 때도 정해져 있습니다
시한은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1항에 따라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입니다. 같은 조 제3항이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 의사에도 이 규정을 준용하므로, 항소심에서 처벌불원서를 내면 공소기각은 되지 않고 형을 정할 때 참작되는 데 그칩니다.
한번 낸 서류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같은 조 제2항에 따라 고소를 취소한 사람은 다시 고소할 수 없고, 반의사불벌죄에서도 처벌불원 의사를 밝힌 뒤에는 다시 처벌을 원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합의금이 약속대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도 번복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합의금이 아직 다 들어오지 않았다면 처벌불원서 제출은 입금 확인 뒤로 미루는 편이 낫습니다. 제1심 선고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어 기다려서 잃는 것이 없고, 먼저 낸 서류는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순서는 이렇게 잡는 것이 안전합니다.
상해나 사기라면 서류가 기소를 막지는 못합니다
일반 범죄에서는 처벌불원서가 있어도 검사가 기소할 수 있습니다. 상해죄(형법 제257조 제1항)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고, 사기와 횡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범죄는 2013년 법 개정으로 친고죄 규정이 없어졌기 때문에, 합의서를 받아도 수사는 계속됩니다.
그렇다고 서류가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형법 제51조 제4호는 형을 정할 때 범행 후의 정황을 살피도록 하는데, 피해 회복과 피해자의 용서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법원은 합의금이 실제로 지급됐는지, 피해자가 스스로 용서했는지를 함께 보고 형을 낮추거나 집행유예를 판단하는 자료로 씁니다. 검사도 기소유예 여부를 정할 때 합의 사실을 참작합니다. 다만 합의가 있어도 죄질에 따라 실형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 사건에 죄명이 겹치는 경우도 흔합니다. 가령 폭행과 상해가 함께 입건됐다면 처벌불원서는 폭행 부분만 끝내고 상해 부분은 남습니다. 서류가 있으니 끝났으리라 기대했다가 기소 소식을 듣는 일이 여기서 생깁니다.
서류는 같은데 결과가 달라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법이 그 범죄를 개인 사이의 일로 보느냐, 사회 전체의 문제로 보느냐에서 나옵니다.
민사 책임은 합의서 문구에 따라 따로 정리됩니다
형사에서 처벌불원서를 내도 민사 손해배상 청구가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민사 책임은 합의서에 "이후 민형사상 일체의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문구가 있어야 정리됩니다. 합의금을 준 쪽은 이 문구가 있는지를, 받은 쪽은 이 문구가 합의금 액수와 맞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되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남는데요, 문구가 있어도 나중에 치료비를 더 달라는 요구가 가능한가입니다. 법원은 합의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후유증까지 포기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있어, 합의 이후 새로 드러난 손해는 따로 다퉈질 여지가 있습니다.
합의금을 받은 피해자 쪽은 처벌불원서에 서명하기 전에 합의서에 지급 완료 여부와 추가 청구 포기 범위가 어떻게 적혔는지 읽어 보아야 합니다. 서명한 서류는 되돌릴 수 없는데 민사 문구는 합의서 한 줄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가면, 경찰이 처벌불원서를 달라는 것도, 상대가 취하했다는데 연락이 오는 것도 이제 같은 기준으로 읽힙니다. 죄명이 반의사불벌죄나 친고죄이고 제1심 판결 선고 전이면 서류가 사건을 끝내고, 그렇지 않으면 사건은 계속되며 서류는 형을 정할 때 참작됩니다. 합의금과 서류가 오갔다는 사실보다 어떤 죄명으로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가 그 서류의 무게를 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