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장을 내고 한두 주가 지나면 비슷한 장면을 맞는 분이 많습니다. 매달 25일에 들어오던 생활비가 끊기고, 아이 학원비 결제일은 어김없이 다가옵니다. 판결이 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일은 아닙니다.
이혼소송을 시작하자 남편이 생활비를 한 푼도 주지 않습니다. 판결 전에 생활비나 양육비를 받을 방법이 있을까요?
이혼소송이 걸린 가정법원에 사전처분을 신청하면, 법원이 소송 중 매달 보낼 양육비와 생활비를 임시로 정해 줍니다. 다만 아이 몫과 배우자 몫은 기준이 다릅니다. 누가 아이와 사는지, 생활비를 언제 요구했는지가 결론을 가릅니다.
01 소송 중에도 남는 부양의무
이혼소송을 냈다고 부부가 곧바로 남남이 되지는 않습니다. 혼인은 이혼 판결이 확정되는 날 끝납니다. 그 전까지는 부부의 부양의무를 정한 민법 제826조 제1항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따로 살고 있어도 이 의무는 남습니다.
아이에 대한 의무는 더 단단합니다. 부모는 혼인이 유지되든 끝나든 자녀를 함께 부양해야 하고, 소송 중이라는 사정은 이 의무를 멈추지 못합니다. '소송 중이니 줄 이유가 없다'는 말이 법적으로 설 자리가 없는 까닭입니다.
이혼소송 중에도 부부의 부양의무와 자녀 양육 의무는 그대로입니다. 사전처분으로 판결 전 생활비와 양육비를 먼저 정할 수 있습니다.
사전처분은 가사소송법 제62조 제1항에 근거한 임시 조치입니다. 이혼처럼 가정법원에 사건이 걸려 있을 때 법원이 판결 전까지의 일을 먼저 정해 두는 제도입니다. 아이를 누가 돌볼지, 양육비와 생활비를 누가 얼마씩 낼지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처분은 소 제기, 심판청구, 조정 신청 가운데 하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아직 소장을 내기 전이라면 부양료나 양육비를 구하는 심판청구나 조정 신청만으로도 사전처분을 구할 수 있습니다.
02 두 가정의 엇갈린 결론
두 집을 가정해 놓고 보면 기준이 선명해집니다. 첫 번째 집에서는 남편이 이혼소송을 내고 집을 나간 뒤 생활비를 끊었습니다. 아내는 초등학생 두 아이와 원래 집에 남았습니다. 소장을 받은 다음 날 아내는 "아이들 학원비와 생활비는 보내 달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 아내가 사전처분을 신청하면 법원은 아내를 임시양육자로 정하고, 남편에게 매달 양육비를 보내라고 명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내 본인의 생활비도 문자를 보낸 무렵부터는 부양료로 구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집에서는 아내가 뚜렷한 이유 없이 먼저 집을 나와 1년째 따로 살고, 아이는 남편이 키웁니다. 이 아내가 그동안의 생활비까지 얹어 부양료를 사전처분으로 구하면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아이를 키우지 않으니 양육비는 처음부터 받을 자리가 아니고, 부양료도 기각되거나 크게 깎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청서의 칸은 같아도 담긴 사정은 딴판입니다.
03 결론을 가른 두 기준
첫 번째 기준은 그 돈이 누구의 몫이냐입니다. 양육비는 아이의 몫이라, 누가 이혼에 책임이 있는지와 상관없이 정해집니다. 부양료는 배우자 본인의 몫입니다. 그래서 법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동거를 거부한 배우자가 부양료를 청구하면 받아들이지 않는 흐름입니다.
집을 나온 이유가 폭력이나 위협이었다면 결론은 달라집니다. 함께 살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면 별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므로, 먼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부양료 청구가 막히지는 않습니다. 같은 '먼저 나간 쪽'이라도 경위가 결론을 뒤집는 대목입니다.
두 번째 기준은 언제 달라고 했느냐입니다. 법원은 배우자 부양료를 두고, 부양을 요구했는데도 상대가 주지 않은 때 이후의 것만 청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두 번째 집의 지난 1년 치를 받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동안 생활비를 요구한 적이 없다면 기준이 될 날짜가 없습니다.
아이 양육비는 누구 책임인지와 상관없이 정해지지만, 배우자 생활비는 달라고 요구한 날 이후분만 받을 수 있습니다.
자녀 양육비는 이 점에서도 다르게 다뤄집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쓴 과거 양육비는 적정한 범위에서 상대에게 분담을 청구할 수 있고, 보통 이혼 판결에서 함께 정리됩니다. 배우자 본인 몫은 반대입니다. 문자나 내용증명처럼 날짜가 남는 요구가 있으면 그날을 기준으로 다툴 수 있습니다.
04 금액을 정하는 계산
양육비는 법원이 공표한 양육비 산정기준표에서 출발합니다. 부모 두 사람의 소득을 합친 금액과 아이 나이로 표준양육비를 찾고, 이를 각자의 소득 비율로 나눕니다. 배우자 부양료에는 이런 표가 없습니다. 양쪽의 소득과 재산, 그동안의 생활 수준을 놓고 정합니다.
숫자를 넣어 보면 이렇습니다. 남편이 월 450만 원, 아내가 월 150만 원을 번다면 합산 소득은 600만 원이고 남편의 비율은 75%입니다. 표에서 찾은 아이 한 명의 표준양육비가 12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남편의 부담은 그 75%인 90만 원입니다.
표의 금액은 출발점일 뿐이고, 자녀 수나 아이의 치료비 같은 사정에 따라 더하거나 뺍니다. 또 이 계산은 아이가 신청인과 함께 산다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아이가 이미 상대 쪽에서 지내거나 상대 소득을 확인할 길이 막혀 있다면, 무엇을 먼저 신청할지부터 달라집니다.
이 단계에서 상대가 흔히 꺼내는 카드는 소득을 낮춰 말하는 것입니다. 사업소득이나 현금 수입이 많아 서류상 소득이 실제보다 적게 잡히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때는 가사소송법 제48조의2의 재산명시를 신청해 상대에게 재산목록을 내게 할 수 있습니다. 법원을 통해 금융거래 내역을 조회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05 신청에서 결정까지
지금 통장 앱을 하루에도 몇 번씩 열어 보고 계신다면, 가장 궁금한 건 돈이 언제 들어오느냐일 겁니다. 흐름은 대체로 네 단계입니다.
1) 이혼소송이 걸린 가정법원에 사전처분 신청서를 냅니다. 임시양육자 지정, 양육비, 부양료를 한 신청서에 함께 적을 수 있습니다.
2) 상대가 서면으로 의견을 내고, 양쪽이 소득 자료를 주고받습니다.
3) 심문기일을 열거나 서면으로 심리합니다.
4) 법원이 매달 보낼 금액과 지급 시작 시점을 정해 결정합니다. 상대는 이 결정에 즉시항고할 수 있습니다(가사소송법 제62조 제4항).
법원과 사건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접수부터 결정까지 한두 달 안팎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혼소송은 1심만 1년을 넘기기도 합니다.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주는 것이 이 결정입니다.
흔한 실수는 아이 양육비만 신청하고 본인 생활비는 빼 두는 것입니다. 뒤늦게 따로 구하면 그사이 기간을 두고 다툼이 생기기 쉽습니다. 반대로 받기 어려운 과거 생활비까지 크게 적으면 신청 전체의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상대의 원천징수영수증이나 급여 명세가 있으면 도움이 되지만, 없어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법원을 통해 소득을 확인하는 길이 따로 있습니다.
06 사전처분의 강제력
사전처분에는 집행력이 없습니다(가사소송법 제62조 제5항). 상대가 결정을 받고도 돈을 보내지 않으면, 그 결정문만으로는 통장이나 월급을 압류할 수 없습니다. 대신 상대가 정당한 이유 없이 결정을 어기면 법원은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같은 법 제67조 제1항).
반쪽짜리 무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상대가 과태료를 감수하고 버틸 것이 분명하다면 같은 법 제63조의 가처분이라는 통로가 있습니다. 가처분은 민사집행법을 따르므로 강제집행이 가능합니다. 다만 보전의 필요성을 더 엄격히 따지고, 신청인에게 담보 제공을 명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상대의 재산과 버틸 가능성을 보고 정합니다.
07 판결 이후의 양육비
판결이 확정되면 그때부터는 판결에서 정한 양육비가 기준이 됩니다. 판결에는 집행력이 있어 사전처분 때 막혀 있던 수단이 열립니다.
상대가 월급을 받는 사람이라면,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2회 이상 보내지 않았을 때 양육비 직접지급명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가사소송법 제63조의2). 회사가 월급에서 양육비를 떼어 바로 보내게 하는 제도입니다. 이행명령을 받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3기 이상 지급하지 않으면 30일의 범위에서 감치까지 가능합니다(같은 법 제64조, 제68조).
배우자 본인의 부양료는 이 흐름을 타지 않습니다. 부부의 부양의무는 혼인이 끝나면 함께 끝나므로, 이혼 뒤 배우자 몫은 재산분할과 위자료에서 정리됩니다.
정리하면, 사전처분으로 양육비와 생활비를 함께 신청하되 생활비는 요구한 날을 기록으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상대가 버티면 과태료나 가처분으로, 판결 뒤에는 직접지급명령으로 이어 갑니다.
25일에 비어 있던 입금 내역은 판결 날까지 견뎌야 할 공백처럼 보였을 겁니다. 이제 그 빈칸은 아이 몫과 내 몫으로 나뉘고, 각각 어떤 기준으로 채워지는지도 보입니다. 통장 앱은 잠시 닫고, 생활비를 달라고 마지막으로 말한 날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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