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을 받으려고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택배로 보냈는데, 그 통장이 보이스피싱에 쓰였다는 경찰 연락을 받으셨다면 속은 쪽이 왜 조사를 받는지부터 납득이 안 되시죠.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대출받을 기회를 얻으려고 카드를 넘긴 것도 대가를 약속하고 빌려준 행위로 봅니다. 다만 카드를 넘길 때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들었는지에 따라 처분은 무혐의부터 정식 기소까지 갈립니다.
대출을 해 준다는 말에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택배로 보냈는데, 그 통장이 보이스피싱에 쓰였다며 경찰 연락이 왔습니다. 저도 처벌받나요?
01 양도가 아닌 대여
돌려받기로 하고 잠시 보낸 카드는 '양도'가 아니라 '대여'에 해당합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체크카드나 비밀번호처럼 전자금융거래에 쓰이는 수단을 '접근매체'라 부르고, 제6조 제3항에서 이를 남에게 넘기는 행위를 유형별로 금지합니다. 체크카드와 비밀번호가 바로 그 접근매체이므로 이 조항이 적용됩니다.
대법원은 소유권이나 처분권을 확정적으로 넘겨야 양도로 보고, 잠시 쓰게 하는 것은 양도에서 뺍니다. '심사가 끝나면 카드를 돌려준다'는 말을 듣고 보냈다면 대여로 평가됩니다. 대여는 양도와 달리 정해진 요건이 붙을 때만 처벌됩니다.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 대여죄는 접근매체를 돌려받기로 하고 남이 쓰게 하면서 대가를 주고받거나 요구하거나 약속한 경우(제6조 제3항 제2호), 또는 범죄에 이용할 목적이었거나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쓰게 한 경우(같은 항 제3호)에 성립합니다. 어느 쪽이든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제49조 제4항).
그래서 '보이스피싱에 쓰일 줄은 몰랐다'는 사정은 제3호를 피하게 해 줄 뿐, 제2호의 대가 요건까지 막지는 못합니다. 대출 목적 사건의 쟁점이 대부분 대가 하나로 모이는 이유가 여기 있죠.
02 대출 기회라는 대가
대출을 받기로 한 것 자체가 대가입니다. 대법원은 대가를 '대여에 대응하는 경제적 이익'으로 보고, 현금이 아니어도 대출받을 수 있는 기회 같은 무형의 기대이익을 대가에 넣습니다.
거래 실적을 쌓아야 2천만원을 빌려줄 수 있다며 카드와 비밀번호를 보내 달라는 말에, 그대로 보냈다고 가정해 봅시다. 대출은 끝내 나오지 않았고 손에 쥔 돈도 없습니다.
그러면 '한 푼도 못 받았는데 무슨 대가냐'고 되묻게 되죠. 조문은 대가를 실제로 받은 경우뿐 아니라 요구하거나 약속한 경우까지 적고 있습니다. 대출을 약속받고 카드를 보낸 순간 요건은 채워집니다.
속은 사람에게는 가혹하게 들리는 대목입니다.
대출을 받기로 하고 카드를 넘겼다면, 실제로 대출을 받지 못했어도 대가를 약속받은 대여로 봅니다.
'나도 대출 사기를 당했다'는 사정만으로 혐의가 벗겨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대출 사기의 피해자인 것과 대가를 약속받고 카드를 빌려준 것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속은 경위는 혐의를 지우기보다 처분의 무게를 덜어 주는 사정으로 쓰이는 일이 많습니다.
03 고의를 가르는 사정
무혐의나 무죄로 갈리는 사건은 대개 '남이 내 카드를 쓰게 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고 인정된 경우입니다. 카드를 남이 쓴다는 점과 그것이 대출과 맞바꾸는 관계라는 점을 알아야 고의가 인정됩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 인식을 다음 사정으로 가늠합니다.
가령 정상 금융회사의 대환 절차라 믿고 '본인 확인 뒤 돌려준다'는 말만 들었다면, 남이 쓰도록 빌려준다는 인식을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반대로 '실적을 쌓으려면 저희가 입출금을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면 남이 쓴다는 점은 알았던 셈입니다. 같은 택배 한 상자라도 함께 들은 말이 결론을 바꾸는 거죠.
다만 이전에 같은 일로 조사받았거나, 카드를 여러 장 보냈거나, 상대가 '은행에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는데도 보냈다면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04 사기죄로 번지는 경계
내 계좌에 들어온 돈을 직접 찾아 상대에게 건넸다면 문제는 사기죄로까지 번집니다. 대출 사기 조직은 실적을 만든다며 입금된 돈을 인출해 전달해 달라고 하는 일이 많은데, 그 돈이 보이스피싱 피해금입니다. 이때는 사기 방조나 공범이 검토되고, 사기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형법 제347조 제1항).
택배 한 번과 현금 전달 한 번의 거리가 이만큼 멉니다.
카드만 보냈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 쟁점이지만, 들어온 돈을 직접 찾아 전달했다면 사기 공범까지 문제됩니다.
카드만 보내고 그 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사정이 다릅니다. 사기 방조가 인정되려면 통장이 보이스피싱에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적어도 예상하고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출 목적이 확인되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만 다뤄지는 흐름이 일반적입니다.
반대쪽 끝에는 가족에게 돌려받기로 하고 카드를 빌려준 경우가 있습니다. 대가를 약속하지 않았고 범죄에 쓰일 줄도 몰랐다면 제6조 제3항 어느 호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05 경찰 조사의 세 질문
경찰이 확인하려는 것은 카드를 왜 보냈는지, 무엇을 약속받았는지, 범죄에 쓰일 줄 알았는지 세 가지입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해외에 있거나 특정되지 않는 일이 많아, 수사는 추적 가능한 계좌 명의인에게서 출발하고 그 진술이 첫 자료가 됩니다.
지금 상대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다시 열어 보며 그때 들은 말을 맞춰 보고 계실 겁니다. 진술이 대화 기록이나 택배 송장과 어긋나면 맞는 부분까지 의심받습니다.
가장 흔한 실수는 처벌이 두려워 '카드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발송 기록으로 금방 드러나고, 그 뒤에는 대출 목적이었다는 사실까지 믿기 어려워집니다.
'범죄에 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도 흔히 나오는데요. 이는 '그럴 수도 있겠다'며 받아들인 마음, 곧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니 이상했다는 것과 그때 이미 의심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진술입니다.
06 처분까지의 시간표
첫 연락부터 검찰 처분까지는 몇 달이 걸리는 일이 흔합니다.
1) 경찰 조사: 진술을 마치면 경찰이 송치나 불송치를 정합니다. 피해자와 계좌가 여럿 얽히면 이 단계가 길어집니다.
2) 검찰 처분: 검사가 혐의없음, 기소유예, 약식기소, 정식 기소 가운데 하나를 고릅니다.
3) 약식명령: 벌금이 서면으로 정해지며, 약식명령을 송달받은 다음 날부터 세어 7일 안에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453조 제1항). 마지막 날이 토요일이나 공휴일이면 그다음 평일까지입니다.
4) 정식재판: 피고인이 청구한 경우 벌금보다 무거운 종류의 형은 선고되지 않지만, 벌금액은 늘어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457조의2).
처분의 무게는 넘긴 카드의 수, 계좌로 들어간 피해금 규모, 실제로 받은 돈, 전과, 피해 회복 여부로 정해집니다. 대출 목적이 분명하고 초범이며 카드 한 장으로 끝난 사건은 벌금이나 기소유예로 마무리되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피해금이 크고 계좌가 여럿이면 정식 기소 쪽으로 기웁니다.
07 명의인이 떠안는 뒷일
처분이 끝나도 명의인에게는 기록과 금융거래 제한, 손해배상 청구가 남을 수 있습니다. 벌금형은 범죄경력자료에 남는 전과이고, 기소유예는 전과가 아니지만 수사경력자료에 일정 기간 기록됩니다.
금융거래 제한은 오히려 형사 절차보다 먼저 옵니다. 피해자가 신고하면 그 계좌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지급정지되고, 명의인은 새 계좌 개설이나 비대면 거래가 막히는 등 전자금융거래 제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명의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합니다. 조직원은 찾기 어려워도 명의인은 계좌만으로 특정되거든요. 법원은 카드와 비밀번호를 넘긴 부주의가 범행을 도왔다고 보아 책임을 인정하기도 하고, 범행을 예견하기 어려웠다면 책임을 부정하거나 비율을 낮춥니다.
정리하면, 대출 목적이었어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카드를 보낼 때 무엇을 들었는지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조사에서는 대화 기록과 맞는 사실대로 진술하세요.
대출을 약속하던 상대와의 대화방은 오늘 나가지도, 지우지도 마세요. 카카오톡은 방을 나가면 내 휴대폰에서 대화가 사라지는데, 카드를 보낸 이유와 그때 믿었던 말을 보여 줄 기록은 대부분 그 안에만 있습니다. 대가를 둘러싼 판단도, 사기 방조와 갈리는 선도 그 대화에서 출발합니다.
상담 문의: 062-223-7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