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24분 읽기

국가폭력 피해자 기판력 예외 인정될까, 과거사 소송 재판 가능성

국가폭력 피해자가 앞선 소송에서 패소했더라도 다시 재판을 청구할 수 있을까요. 김병진 씨 사건을 통해 기판력과 위헌법률심판제청의 쟁점을 살펴봅니다.

기판력, 한 번 판결 나면 다시는 다툴 수 없다?

민사소송법에는 '기판력'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한 번 판결이 확정되면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는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막는 장치입니다. 법적 안정성과 분쟁 종결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제도이지요. 하지만 국가폭력 사건처럼 과거의 인권침해 피해가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에도 이 기판력이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가, 바로 그 점이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김병진 씨 사건, 과거사 피해자의 현실

재일교포 김병진 씨는 1983년 보안사에 연행되어 불법 구금과 강제 통역 업무를 강요당했습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가족을 통한 회유와 압박은 계속되었고, 나중에는 책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출판사와 서점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여권 발급까지 금지되었습니다. 김 씨는 2005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지만, 당시에는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기 전이어서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웠습니다. 소멸시효 문제까지 제기되어 결국 패소가 확정되었습니다.

이후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중대한 인권침해 사실이 인정되었음에도, 뒤늦게 다시 제기한 소송에서는 기판력 때문에 또다시 막히게 되었습니다. 소멸시효의 벽은 헌법재판소가 이미 위헌 결정을 내려 넘을 수 있게 되었지만, 기판력이라는 벽이 여전히 피해자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상황입니다.

왜 국가폭력 사건은 예외가 필요할까

기판력 제도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무한정 소송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 그것도 불법 구금이나 고문, 인권침해와 같은 중대한 범죄까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요. 당시 피해자들은 증거를 확보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국가기관이 진실을 은폐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미 재판에서 졌으니 다시는 다툴 수 없다"고 한다면, 피해 회복의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헌재가 2018년에 과거사 사건에서 민법상 소멸시효 적용을 위헌이라 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진실규명 이후에야 비로소 권리구제의 길이 열리는데, 그 전에 소송을 했다가 패소한 사람은 오히려 더 불리해지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던진 새로운 화두

서울중앙지법은 이번 사건에서 김병진 씨 측이 낸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접수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216조, 즉 기판력의 범위에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을 예외로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과거사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문턱은 크게 낮아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개인 사건에 그치지 않고, 국가폭력 사건 전반의 피해 회복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다룬 사안은 한 피해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법 제도의 한계와 국가폭력 피해 회복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판력은 법적 안정성을 위해 필요하지만, 그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가 영원히 구제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정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국가폭력 피해자의 회복을 인정할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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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

이정도변호사

형사 · 교통사고 · 노동/산재 · 기타서울법무법인 아이엘

사법시험 출신 음주운전/교통사고/형사/노동 전문 이정도 변호사입니다. 용인시청 고문변호사/서울시 공익변호사/국방부 검찰단 사망장병의 유족 및 군범죄피해자 국선변호인 등 다수의 활동경력으로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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