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편도 2차선 국도. 뒤에서 상향등을 번쩍이며 바짝 따라붙던 차가 있었습니다. 경적을 길게 울리고, 차선을 오가며 위협하고, 급기야 뒤 범퍼가 닿을 듯 거리를 좁혀 옵니다. 심장이 내려앉은 운전자는 겁에 질려 속도를 올렸고, 앞 교차로에서 미처 커브를 틀지 못한 채 가드레일을 들이받았습니다.
제 사무실에 오신 분들이 이 대목에서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차가 저를 직접 들이받은 건 아니라서 제가 혼자 사고 낸 걸로 처리될까 봐 무서워요. 상대방은 내가 언제 박았냐, 지가 놀라서 박아놓고 왜 남 탓이냐고 큰소리쳤어요."
손도 안 댔는데 왜 그 사람 책임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물리적 충돌이 없어도 책임은 성립합니다. 형법과 판례가 오래전부터 인정해 온 상당인과관계 법리 때문인데요, 가해자의 위협적 추격 행위와 피해자의 사고 사이에, 사회 통념상 '그런 추격이라면 저런 사고가 날 만하다'는 연결고리가 인정되면 법원은 이를 가해자가 만든 사고로 봅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비접촉 사고에서, 앞선 차량이 급정거하거나 위협하여 뒤차가 이를 피하려다 사고가 난 경우 앞차 운전자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를 여러 차례 남겼습니다. 핵심은 '직접 닿았는가'가 아니라 '그 공포와 회피 행동이 가해자의 행위에서 비롯되었는가'입니다.
보복운전, 특수협박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많은 분이 보복운전을 그저 난폭운전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자동차라는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사람을 위협했다면 이는 특수협박(형법 제284조), 상해 결과가 발생하면 특수상해 내지 특수폭행치상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형량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위험한 물건을 이용한 범죄이기 때문에 초범이라 해도 벌금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이 다쳤다면 징역형의 실형이 충분히 선고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최근 법원은 보복운전, 특히 고속 추격으로 인명 피해가 난 사건에 대해 예전보다 훨씬 엄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단순히 홧김에 그랬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보험사가 고의라 못 준다고 할 때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몸을 다치고 차가 부서져 상대 보험사에 청구하면, 보험사는 십중팔구 이렇게 나옵니다. "이건 고의로 낸 사고이므로 약관상 면책 대상입니다."
이 말에 좌절하고 돌아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보험이 안 되면 가해자 개인을 상대로 직접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 됩니다. 오히려 이 편이 가해자에게 더 확실하게 책임을 묻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청구할 수 있는 항목은 생각보다 넓습니다. 차량 수리비와 감가로 인한 격락손해, 치료비와 향후치료비, 일하지 못한 기간의 일실수입, 그리고 그날 밤의 극심한 공포에 대한 위자료까지 포함됩니다. 여기에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상 지연손해금 연 12%가 붙습니다. 판결이 확정되고도 버티면 그 이자가 계속 불어난다는 뜻입니다.
혼자 대응하면 놓치는 것들
혼자 형사 고소장을 접수했다가 낭패를 보시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가장 흔한 실수는 특수협박으로만 고소하고 상해 부분을 빠뜨리는 겁니다. 다친 사실이 있는데도 이를 형사 절차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나중에 민사에서 손해를 입증할 근거가 약해집니다.
또 하나. 블랙박스 영상은 원본이 생명입니다. 스마트폰으로 화면을 다시 찍거나, 필요한 부분만 편집해서 제출하면 증거로서의 신빙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상대 차량 번호판이 식별되는 원본 파일과 사고 직전의 연속된 주행 기록이 통째로 보존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블랙박스는 오래된 영상부터 자동으로 지워집니다. 이 점을 모르고 며칠 흘려보내다 결정적 장면을 잃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형사 고소에는 시간의 압박도 있습니다. 가해자를 특정할 증거가 살아 있을 때 신속히 움직여야 하고, 만약 상대가 먼저 쌍방 시비로 몰아 맞고소를 걸어오면 대응이 훨씬 복잡해집니다. 초기 며칠의 대응이 사건 전체의 방향을 가릅니다.
지금 준비하실 것
상담을 오실 때는 세 가지만 챙겨 주십시오.
이 자료들을 가지고 오시면, 먼저 인과관계가 법적으로 인정될 수준인지 정밀하게 검토합니다. 형사 고소의 죄명 구성부터 민사 배상 범위 산정까지, 두 절차를 어떻게 맞물려 진행할지 방향을 함께 잡아 드립니다.
직접 부딪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대가 발뺌하고 있다면, 그 논리는 법정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증명하는 건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영상이 지워지기 전에,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자료를 들고 찾아오십시오. 그날 밤의 공포가 억울함으로 남지 않도록, 함께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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