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지하차도를 지나다 순식간에 차오른 물에 갇혀본 분, 멀쩡해 보이던 도로의 포트홀에 바퀴가 빠져 크게 다친 분, 인도를 걷다 관리가 안 된 맨홀이나 싱크홀로 무너져 내린 분. 이런 사고를 겪고 나면 대부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게 그냥 제가 운이 없었던 건가요, 아니면 관리하는 쪽 잘못인가요?"
제가 상담실에서 가장 먼저 드리는 답은 이렇습니다. 그건 대개 관리 주체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묻는 통로가 바로 국가배상법 제5조입니다.
도로와 지하차도는 영조물입니다
국가배상법 제5조는 도로, 하천, 그 밖의 공공 영조물의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어 타인에게 손해가 생긴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단, 여기서 핵심은 '하자'의 의미입니다. 시설이 물리적으로 부서졌느냐만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그 영조물이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를 하자로 봅니다. 도로라면 차량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야 하고, 지하차도라면 폭우 때 사람이 갇히지 않도록 관리되어야 합니다. 그 기대에 못 미쳤다면 하자입니다.
아무것도 안 한 것도 위법입니다
최근 판결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여기입니다. 위험이 존재하는데도 관리 주체가 응당 해야 할 조치를 하지 않은 부작위 자체를 관리상 하자이자 위법으로 인정하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드러난 구조가 딱 그렇습니다. 인근 하천이 위험 수위를 넘겼다는 정보가 있었고, 진입을 통제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차단막을 내리거나 교통을 막지 않았다면,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다는 항변은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위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고, 막을 수 있었는데 막지 않았다는 점이 입증되면 책임이 성립합니다.
제가 맡았던 한 사건을 각색해 말씀드리면, 김 씨는 장마철 밤 지하차도를 지나다 침수로 차가 잠겨 크게 다쳤습니다. 지자체는 기록적 폭우라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저희는 그날 배수펌프가 정비 불량으로 절반만 가동됐고 진입 차단 시설이 있었는데도 작동하지 않은 정황을 자료로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관리 소홀이 인정됐습니다.
혼자 대응하다 놓치는 것들
혼자 대응하다 가장 많이 그르치는 지점이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현장 증거를 놓치는 것입니다. 사고 직후 파손 상태, 침수 흔적, 안전표지나 차단 시설의 유무는 며칠만 지나도 복구되어 사라집니다. 나중에 "그때 위험했다"고 말로만 주장하면 입증이 되지 않으므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사진과 영상, 블랙박스, 인근 CCTV 보존 요청을 하셔야 합니다.
둘째, 기한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국가배상 청구권에도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부터 5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 시간이 넉넉해 보여도 치료가 길어지고 후유장해 판정이 늦어지다 보면 어느새 기한이 임박합니다. 특히 관리 주체인 국가와 지자체를 상대로 정보공개나 자료 확보를 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므로,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국가를 상대로 한다고 해서 거창한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고 현장을 찍은 사진과 영상, 블랙박스 파일, 병원 진단서와 치료비 영수증, 그리고 사고 경위를 기억나는 대로 적은 내용이면 충분합니다. 경찰에 신고했다면 그 접수 기록도 도움이 됩니다.
이 자료들을 놓고 저희는 우선 그 시설의 관리 주체가 어디인지, 위험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었는지, 통제·정비 의무를 다했는지를 확인합니다. 이 세 가지가 맞물린다면 배상 책임이 선명해집니다.
사고를 당한 당사자는 대개 "국가를 상대로 이겨봐야 얼마나 되겠나" 하고 지레 포기하곤 하십니다. 하지만 관리 부실이 반복 확인되고 있는 요즘, 법원의 판단은 분명히 피해자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증거가 살아 있을 때, 시효가 남아 있을 때 움직이셔야 합니다.
지금 겪으신 일이 억울하게 느껴지신다면, 혼자 결론 내리지 마시고 먼저 통화로 상황을 들려주십시오. 무엇을 지금 확보해야 하는지부터 함께 짚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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