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규명 결정 통지서가 왔고, 결정문에는 아버지 이름과 국가가 한 일이 적혀 있습니다. 오래 기다린 문장을 읽고 나면 남는 질문은 대개 하나죠. 국가에 배상을 청구하려면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아버지 사건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습니다. 유족은 국가배상을 언제까지 청구해야 하나요?
기준은 결정을 안 날부터 3년입니다. 그 '안 날'은 보통 결정이 내려진 날이 아니라 통지서를 받은 날입니다. 사건이 70년 전에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 늦은 것은 아닙니다.
Q. 결정문만으로 배상금이 나올까요
진실규명 결정은 국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배상금을 정해 주는 판결은 아닙니다. 배상을 받으려면 유족이 대한민국을 피고로 따로 민사소송을 내야 합니다. 3년이라는 기한도 바로 이 소송을 언제까지 내야 하는지를 가리킵니다.
결정문에 국가의 사과와 피해 회복을 권고하는 문장이 있으면, 국가 쪽에서 먼저 연락이 오리라 기다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권고만으로 배상 절차가 시작되지는 않습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기간은 그대로 흐릅니다.
청구의 근거는 국가배상법 제2조입니다. 이 조문은 공무원이 직무를 하면서 고의나 과실로 법령을 어겨 손해를 입히면 국가가 배상한다고 정합니다. 불법 연행과 고문, 재판 없는 처형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같은 법 제9조에 따라 배상심의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소송을 낼 수 있습니다.
기한은 민법이 정합니다. 국가배상법 제8조가 이 법에 없는 사항은 민법을 따르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기간 안에 청구하지 않으면 배상받을 권리 자체가 없어지는데, 이것을 소멸시효라고 부릅니다.
Q. 70년 전 사건도 아직 청구할 수 있을까요
사건이 아무리 오래됐어도, 진실화해법이 정한 과거사 사건이라면 지금 따질 기한은 '안 날부터 3년' 하나입니다. 원래 민법 제766조는 기한을 두 개 둡니다. 제1항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제2항은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입니다.
국가를 상대로 할 때는 10년 대신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의 5년이 적용됩니다. 유족의 청구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이라 이 조문들을 따릅니다.
이대로라면 1950년이나 1970년대의 사건은 수십 년 전에 기한이 끝난 셈입니다. 국가가 사건을 감추고 기록을 조작해 유족이 알 길조차 없었는데도 말이죠. 헌법재판소는 2018년 8월 30일 이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렸습니다. 진실화해법 제2조 제1항 제3호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과 제4호의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에 불법행위 시점부터 세는 기한을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입니다.
남은 것은 제1항의 3년입니다. 대법원도 이후 이런 사건에는 10년과 5년을 적용하지 않고 3년만 따진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이 결정 이전 기준으로 쓴 설명이 아직 검색되니, 읽는 글이 2018년 8월 이후의 기준인지 먼저 보십시오.
진실화해법상 과거사 사건이라면 사건이 아무리 오래됐어도, 따질 기한은 '안 날부터 3년' 하나입니다.
기다린 세월에 비하면 3년은 짧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Q. 3년은 언제부터 셀까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은 두 가지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알게 된 날입니다. 국가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가해자가 국가라는 사실입니다. 법원은 과거사 사건에서 이 날을 대체로 결정이 내려진 날이 아니라 결정 통지서를 송달받은 날, 곧 통지서가 공식적으로 전달된 날로 봅니다. 결정문을 받아 보아야 누가 언제 어떻게 희생됐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숫자를 넣어 보죠. 결정이 2024년 5월 10일에 내려지고 통지서가 5월 27일에 도착했다고 가정합니다. 민법은 기간의 첫날을 빼고 세므로, 3년은 2027년 5월 27일에 끝납니다. 결정일부터 세면 2027년 5월 10일입니다.
그렇다면 늦은 날짜를 믿고 기다려도 될까요. 실무에서는 결정일부터 3년 안에 소장을 내는 쪽을 권합니다. 소송에서 국가가 유족이 조사 과정이나 언론 보도로 더 일찍 알았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거든요. 결정일을 기준으로 움직이면 이 다툼이 처음부터 생기지 않습니다.
3년은 보통 통지서를 받은 날부터 셉니다. 다만 다툼을 피하려면 결정일부터 3년 안에 소장을 내는 편이 안전합니다.
날짜 하나가 출발선을 앞뒤로 옮겨 놓습니다.
Q. 형제마다 기한이 다를 수 있을까요
배상 청구권은 유족마다 따로 있어서, 3년이 시작되는 날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두 가지 몫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받았어야 할 위자료, 곧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을 상속한 몫과 유족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한 위자료입니다. 그런데 진실규명 신청은 유족 가운데 한 사람이 하는 경우가 많고, 통지서도 대개 신청인에게 가죠.
지방에 사는 동생이 통지서를 받지 못했다면, 동생의 3년은 동생이 결정을 알게 된 날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다만 국가는 가족이니 신청 무렵부터 알았을 것이라고 맞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법원은 동생이 신청 과정에 함께했는지, 평소 연락이 오갔는지 같은 사정을 보고 판단합니다.
지금 결정문을 사진으로 찍어 형제들에게 보낼지 고민하고 계실 수도 있는데요. 나중에 국가는 그 메시지를 보낸 날을 형제가 결정을 안 날로 내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이른 날짜를 기준으로 가족이 함께 한 소송의 원고가 되는 방법이 가장 덜 복잡합니다.
통지서를 받은 날부터 이미 3년이 지났다면, 이 계산법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국가가 시효를 주장할 때 법원이 그 주장을 신의에 반한다며 막아 주는 경우는 아주 좁습니다. 이때도 통지서를 직접 받지 못한 유족이나 유죄판결이 있었던 사건은 따로 따져 볼 여지가 있습니다.
Q.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건은 어떻게 될까요
아버지가 그 사건으로 유죄판결까지 받았다면 기준이 바뀝니다. 가령 1970년대에 간첩 혐의로 끌려가 고문 끝에 자백하고 징역형을 받았다고 해 보겠습니다. 위원회가 조작이라고 결정해도 법원의 유죄판결은 그대로 남습니다. 판결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국가에 배상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이런 사건에서 재심 무죄판결이 확정된 때를 기준으로 '안 날'을 따져 왔습니다. 재심은 이미 확정된 판결을 다시 심리하는 절차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배우자나 자녀 같은 직계친족, 형제자매가 재심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424조).
형사 재심 청구에는 기한이 없으니, 재심에 몇 년이 걸려도 그 기간이 배상 기한을 먹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같은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어도 출발점이 전혀 다른 겁니다.
다만 고문이나 불법 구금처럼 판결과 떼어 볼 수 있는 손해도 있습니다. 이런 손해까지 재심 뒤로 미룰 수 있는지는 다툼이 될 수 있습니다. 재심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결정 통지일부터의 3년을 따로 적어 두고, 그 안에 무엇을 청구할지 검토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재심 무죄가 확정되면 형사보상이라는 별도 절차도 열립니다. 형사보상법 제8조에 따라 무죄재판이 확정된 사실을 안 날부터 3년, 확정된 때부터 5년 안에 청구해야 합니다. 같은 3년이라도 시작점과 절차가 국가배상과 다릅니다.
Q. 기한은 무엇으로 지킬까요
시효를 멈추는 것은 법원에 소장을 접수하는 일입니다. 민사소송법 제265조에 따라 소를 제기한 때 시효 중단의 효력이 생기므로, 판결이 3년 뒤에 나와도 상관없습니다. 국가에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은 민법 제174조의 최고, 즉 이행을 독촉한 것에 그칩니다. 6개월 안에 소송 같은 후속 조치를 하지 않으면 그 효력이 사라집니다.
통상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1) 통지서를 받은 날을 확인합니다. 날짜가 분명하지 않으면 더 이른 날을 기준으로 잡습니다.
2) 대한민국을 피고로 소장을 접수합니다. 시효는 이날 멈춥니다.
3) 국가는 소장 부본(사본)을 받은 날부터 30일 안에 답변서를 냅니다. 이때 소멸시효나 위자료 액수를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4) 1심은 사건에 따라 수개월에서 1년 남짓 걸립니다.
5) 판결서를 받은 날부터 2주 안에 항소할 수 있고, 국가가 액수를 두고 항소하기도 합니다.
이 계산은 통지서를 받은 유족이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기본 경우를 전제로 합니다. 다른 법률로 이미 보상금을 받은 적이 있다면, 청구할 수 있는 범위부터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진실규명 결정을 안 날부터 3년 안에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장을 접수해야 합니다. 유죄판결이 있었던 사건은 재심 무죄 확정이 기준이 됩니다.
결정문에서 아버지 이름을 찾아 읽던 순간, 그 통지서는 오래 기다린 사실 확인이었습니다. 같은 통지서가 이제는 3년이 시작된 날을 알려 주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결정일과 봉투가 도착한 날짜를 결정문 첫 장에 나란히 적어 두시면, 그 두 줄이 이후 모든 계산의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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