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경찰서 수사관 OOO입니다. 피의자 조사가 필요하니 출석 일자를 협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문자 한 통을 받고 밤새 검색하다 새벽에 전화를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먼저 답을 드리면, 조사 결과는 죄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무엇을 어떤 순서로 말했느냐에서 갈립니다. 첫 조서에 남은 문장은 송치 여부, 기소 여부, 나중에 재판까지 갔을 때의 양형 판단에서 계속 인용되는 기준선이 됩니다. 그래서 조사 하루 전에라도 방향을 잘 정하고 들어가는 것과 그냥 들어가는 것의 차이가 큽니다.
첫 조서 한 장이 끝까지 따라다니는 이유
피의자신문조서는 법정에서 피고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만 증거로 쓸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부인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실무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우선 검사는 그 조서를 보고 기소 여부를 정합니다. 애초에 재판까지 가지 않는 것이 목표인데, 조서 때문에 기소가 되면 이미 한 단계 밀려버리는 것이죠. 게다가 법정에서 이전의 진술을 뒤집으려면 왜 그때 그렇게 말했는지를 납득시켜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진술의 신빙성까지 함께 흔들리게 됩니다.
같은 내용의 고소장, 갈린 두 사람
제가 상담했었던 두 사건을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둘 다 지인에게 사업자금 명목으로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사기로 고소당한, 전과 없는 자영업자였습니다.
한 분은 혼자 출석했습니다. '정말 갚을 생각이었다'는 말만 반복했는데, 수사관이 물은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돈을 받을 당시 카드 연체가 얼마였는지,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였죠. 이 분은 당시 기억이 나는 대로 대답을 했고, 나중에 계좌를 뽑아 보니 그중 상당액이 다른 채무 변제에 쓰인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술과 계좌 내역이 어긋나는 그 순간, 그 어긋남 자체가 편취 고의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되어버렸습니다.
또 다른 분은 조사 전날 상담을 오셨습니다. 3년 치 거래내역을 뽑아 자금 흐름을 정리했고, 매달 조금씩이라도 변제한 내역과 실제 사업이 굴러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임대차계약서와 거래명세서를 챙겼습니다. 조사에서는 자료를 먼저 내밀고 그 위에서 설명을 했죠. 결과는 불송치였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결백의 정도가 아닙니다. 답변이 자료보다 먼저 나왔는가, 자료가 답변보다 먼저 나왔는가의 차이였습니다.
진술서 초안은 제출하려고 쓰는 게 아닙니다
출석 전에 사실관계를 시간순으로 적어 보시라고 권합니다. 다만 목적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 초안은 수사기관에 내는 문서가 아니라, 내 기억을 고정하고 내게 불리한 지점이 어디인지 미리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초안을 그대로 들고 가 제출하는 건 오히려 위험합니다. 쟁점이 아닌 사실까지 스스로 적어 넣어, 고소장에는 없던 새로운 혐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경우를 여러 번 봤습니다. 초안을 통해 정리한 내용 중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남길지는 조사 전에 선별하셔야 합니다.
진술거부권은 '쓰느냐'가 아니라 '언제 쓰느냐'입니다
수사기관은 신문 전에 진술거부권을 고지해야 합니다. 권리이므로 행사해도 그 자체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입을 꾹 닫고 있는 전면 묵비는 실무에서 대가가 따릅니다.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사안에서는 증거인멸 우려를 뒷받침하는 사정으로 언급되기도 하고, 수사가 계좌 추적과 압수수색으로 확대되면서 오히려 길어질 수도 있죠. 그렇다고 기억은 흐릿한데 추측으로만 답하는 것은 더 위험합니다.
그래서 제가 실제로 쓰는 기준은 이렇습니다. 다툼 없는 객관적 사실은 답하고, 고의나 동기, 인식처럼 평가가 들어가는 질문은 자료 확인 후 서면으로 정리해 내겠다고 하는 겁니다.
초범이라는 사정이 실제로 힘을 발휘하는 지점
초범이라서 봐주는 게 아닙니다. 초범이라는 사정이 다른 요소와 결합할 때 기소유예나 불기소로 이어지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피해 회복 여부, 경위의 우발성, 그리고 진술 태도입니다.
여기서 태도란,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입니다. 같은 질문에 두 번 다르게 답하면 초범이어도 정식재판으로 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혐의를 다투는 사건에서 분위기에 눌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해 버리면 그 한 문장이 자백으로 읽히기도 하죠.
인정할 것인지 다툴 것인지의 방향을 첫 조사 전에 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조사 전날까지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 출석일 조정 수사관에게 연락해 날짜를 미룰 수 있습니다. 다만 연락 없이 반복해 불출석하면 체포영장으로 이어집니다.
▶ 죄명과 고소 요지 확인 출석요구서의 죄명을 확인하고, 어떤 사실로 고소됐는지 담당 수사관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 원본 자료 확보 카카오톡은 캡처가 아니라 대화 내보내기 전체, 계좌는 거래내역서를 발급받으세요. 일부만 낸 캡처는 신빙성을 떨어뜨립니다.
▶ 시간 순서대로 표 작성 날짜, 상대방, 오간 내용, 뒷받침 자료. 네 칸이면 충분합니다.
▶변호인 참여 신청 당일에도 가능하지만, 미리 알려두는 편이 진행이 매끄럽습니다.
상담하실 때 이것만 챙겨 오시면 됩니다
받은 문자 원문, 사건번호와 담당 수사관 이름, 계약서나 이체내역 같은 관련 자료, 그리고 기억나는 대로 적은 메모면 충분합니다. 정리가 안 돼 있어도 괜찮습니다. 흩어진 이야기에서 쟁점을 추려 내는 게 제 일입니다.
첫 조서를 쓰는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조사 하루 전이라도 예상 질문을 뽑고 답변의 뼈대를 세우는 일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출석일이 잡히셨다면, 그 전날이 되기 전에 한 번 이야기 나눠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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