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쏘의 일이 AI로 넘어간 자리, 변호사는 무엇으로 이름을 남기나
판례 검색과 초안 작성, 변호사가 실무를 배우던 그 일이 가장 먼저 AI로 넘어갔습니다. 신입 채용은 얼어붙고 도제식 훈련은 무너지는 지금, 변호사의 이름값은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새벽 2시 서초동 빌딩의 불빛이 줄었습니다. 야근하던 어쏘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들이 하던 일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소 로펌 입사 3년 차 어쏘 변호사를 묘사한 한 보도는 'AI가 수습을 대신한다'며, 어쏘 5명이 하던 일을 이제 2명이 맡는다고 전했습니다.
변호사 업계의 지각변동은 이제 '도입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구조 변화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가장 먼저 자동화된 건 '변호사가 실무를 배우던 일'이었다
주목할 점은 AI가 잠식한 영역의 성격입니다. 화려한 변론이나 전략적 판단이 아니라, 신입 변호사가 일을 익히던 바로 그 영역이 먼저 무너졌습니다.
과거 로펌과 기업 법무팀은 신입 변호사에게 판례 검색, 사실관계 정리, 계약서 초안, 준비서면 초안, 리서치 메모 작성 같은 기초 업무를 맡기며 실무 감각을 익히게 했지만, 범용 AI가 급격히 고도화되면서 바로 그 '어쏘급 기본 업무'가 가장 먼저 자동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결과는 채용 시장에 직격탄으로 나타납니다.
한 대형 로펌 파트너는 지인 사무소에서 어쏘 자리가 비었는데도 뽑지 않는다며, 기본 서류 업무부터 쟁점 리서치까지 AI로 상당 부분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비용 계산은 더 냉정합니다.
변호사 10명 안팎 규모 중소 로펌을 이끄는 서초동의 한 대표 변호사는 AI를 쓰면 저연차 1명 이상 분량의 일을 해낼 수 있어, 사건이나 매출이 4~5억 원 이상 늘지 않는 이상 추가 채용 계획은 당분간 없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이 변화가 한 세대의 '훈련 경로'를 통째로 끊는다는 데 있습니다.
10대 대형 로펌의 한 파트너는 요즘 신입 변호사는 돈을 주고 교육을 시키는 셈이라며, 교육의 의무만 떼어놓고 보면 냉정하게 신입을 뽑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도제식으로 어깨너머 배우던 실무 감각이, 이제는 개인이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무엇이 된 겁니다.
시장은 커졌는데 들어갈 문은 좁아졌다
숫자가 상황을 압축합니다.
2026년 상반기 합격자 1,700여 명 중 약 4분의 1만 상위 코스에 진입하고, 나머지는 중소 로펌으로 쏠리는 구조입니다.
한쪽에서는 다른 그림이 펼쳐집니다.
10개 주요 로펌의 2026년 신입 채용은 총 234명으로 전년(227명)보다 3.1% 늘었고, 광장은 32명에서 42명으로, 김앤장은 41명에서 47명으로 인력 확보에 속도를 냈습니다.
상위 로펌은 오히려 인재를 입도선매하고,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한 다수는 좁아진 중소 시장에서 경쟁한다는 양극화입니다.
체감은 채용 공고 한 건에서도 드러납니다.
한 중소 로펌 어쏘는 재작년 30개, 작년 50개였던 지원 서류가 올해는 공고를 올리자마자 세 자릿수로 들어왔다고 전했습니다.
변호사 4만 명 시대, 시장의 파이는 커졌지만 그 파이를 나누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AI가 변호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변호사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좌담에서 변호사들은 그동안 신입은 주로 검색을 했지만 검색 잘하는 변호사를 능력 있다고 보지는 않으며, 앞으로는 검색보다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도구를 다루는 능력은 기본값이 되고, 차별화는 그 위에서 일어납니다.
AI가 못 가져가는 것에 이름을 새겨야 한다
그렇다면 변호사 개인은 무엇으로 살아남는가. 답은 AI가 합성하지 못하는 영역에 있습니다.
한 법률 마케팅 분석은 AI가 지식을 합성할 수는 있지만 실무의 '온도'는 알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의뢰인의 언어로 번역하되 변호사로서의 품격이 느껴지는 콘텐츠가 고단가 사건의 수임으로 이어진다고 봤습니다.
판례를 끌어모으는 일은 이제 누구나 합니다. 그 판례를 의뢰인의 사정에 맞게 해석하고, 책임지고 결정을 권하는 일이 변호사의 몫으로 남습니다.
브랜딩 전략도 이 논리를 따릅니다.
중소형 사무소는 '이혼 전문', '의료소송 전문'처럼 특정 분야에 깊이를 보여줄 수 있고, 네이버 C-Rank는 특정 주제에 집중된 블로그를, 구글 E-E-A-T 기준도 분야별 전문성을 높이 평가합니다.
더 결정적인 차별점은 사람입니다.
의뢰인은 '법무법인'보다 '내 사건을 직접 담당할 변호사'에게 관심이 있고, 변호사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 사건 접근 방식을 콘텐츠에 담으면 대형 로펌이 따라 하기 어려운 차별화가 됩니다.
수임의 길목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한 법률 상담 플랫폼은 문의 내용과 희망 비용을 입력하면 1분 내외로 변호사가 직접 연락하는 구조를 내세웁니다.
의뢰인이 AI로 자신의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 찾아오는 시대에는, 첫 응답 속도와 그 응답의 질이 곧 경쟁력이 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AI는 변호사가 '검색하던 일'을 가져갔습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판단, 책임, 그리고 의뢰인이 기억하는 이름입니다. 저연차 시절 어깨너머로 배우던 훈련 경로가 끊긴 지금, 변호사 개인은 스스로의 전문성을 콘텐츠로 외부에 증명해야 합니다. AI에게 일을 빼앗기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AI가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어지는 변호사가 되는 것입니다. 도구를 두려워할 시간에, 그 도구가 골라줄 만한 깊이를 쌓는 편이 낫습니다.
작성자
macdee 에디터
macdee 개발팀과 법률 마케팅 전문가가 작성한 인사이트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