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동향2026년 7월 15일· 👀 52

태평양 900명이 하비를 켰다: '전사 도입'이 개인 변호사에게 던진 숙제

태평양이 국내 로펌 최초로 900여 명 전 구성원에게 글로벌 리걸 AI '하비'를 켰습니다. 대형 로펌의 '전사 도입'이 시작된 순간, 개인 변호사의 경쟁 조건은 무엇으로 갈리는가.

7월 1일, 한 로펌에서 900개의 계정이 동시에 켜졌습니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글로벌 리걸 AI 플랫폼 '하비(Harvey)'를 변호사·전문위원·고문 등 전 구성원 900여 명을 대상으로 정식 도입한 것입니다. 국내 로펌이 글로벌 리걸 AI를 일부 인원이나 특정 업무가 아니라 전 구성원의 상시 업무 인프라로 구축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핵심은 규모가 아니라 '방식'입니다. 그동안 대형 로펌들이 AI를 다뤄온 방식과 태평양의 이번 결정은 결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개인·중소형 변호사에게 던지는 신호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일부 계정'에서 '전 구성원'으로: 도입의 문법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국내 로펌의 AI 활용은 조심스러웠습니다.
법무법인 세종은 태평양과 비슷한 시기에 하비 파일럿을 시작했지만 초기 30개 계정에서 올해 100개로 늘리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해왔고, 전 구성원 대상 전사 도입은 아니며 자문·딜 부문에서 영문 계약서 검토 등 영어 관련 업무에 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형 로펌들도
자체 구축형(폐쇄형)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일부 인원·업무에 시범 적용해 온 흐름이었습니다.


태평양의 선택은 여기서 갈라집니다.
일부 부서나 특정 업무에 한정하지 않고 전 구성원이 활용하는 업무 플랫폼으로 확대 운용하기로 했고, 자체 구축형 시스템이나 제한적 시범 적용이 아니라 글로벌 프론티어 모델 기반의 검증된 리걸 AI 플랫폼을 전 구성원에게 전사적으로 적용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 결정의 배경에 있는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태평양 관계자는 "구성원들 사이에 '이 부분에서는 돈을 아끼지 말자'는 공감대가 컸다"고 전했습니다.
그 이유도 분명합니다.
소송이나 M&A 자문 과정에서 수만~수십만 페이지 자료를 한꺼번에 업로드해 다수 변호사가 함께 공유·분석해야 효율이 나는 구조이다 보니, 일부 인원에게만 계정을 주는 방식으로는 의미가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즉, AI를 '일부가 실험해보는 도구'가 아니라 '모두가 딛고 서는 바닥'으로 정의한 것입니다. 파일럿을 넘어 인프라가 된 순간, 경쟁의 기준선 자체가 올라갑니다.

'하비 도입' 뒤에 숨은 진짜 무기: 자체 데이터

더 주목할 대목은 외부 플랫폼 도입이 절반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태평양은 하비를 전 구성원 900여 명에게 정식 도입하는 것과 별개로, 내부 DB를 활용한 자체 시스템 구축도 진행 중이며, 이 작업을 신생 리걸테크 스타트업 멘타트와 함께 지난 3월부터 DB 전처리 작업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외부의 범용 성능과 내부 데이터 자산을 동시에 쥐는 '투트랙' 전략입니다.

여기서 개인 변호사가 반드시 읽어야 할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이준기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자체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나선 로펌들도 전처리 작업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 성과로 이어지기까지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이렇게 됩니다. AI의 진짜 경쟁력은 어떤 모델을 쓰느냐가 아니라, 정리된 나만의 데이터를 얼마나 가졌느냐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대형 로펌조차 데이터 전처리에 오랜 시간과 비용을 쏟습니다. 반대로 개인·중소형 사무소는 자신이 다뤄온 사건 서면, 상담 기록, 승소 논리라는 원석을 이미 쌓아두고도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같은 하비, 같은 챗봇을 켜도 결과물의 밀도가 갈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개인은 이미 달리고 있다, 문제는 '체계'다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AI 도입 속도만 보면 오히려 개인이 조직을 앞서갑니다.
2026 Legal Industry Report에 따르면 법률 전문가의 약 70%가 업무에 범용 AI 도구를 사용하며, 이는 1년 만에 두 배 넘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그러나 같은 조사는 다른 그림도 보여줍니다.
개인 변호사들이 생성형 AI를 받아들이는 동안, 많은 로펌은 윤리적·운영상 리스크를 관리할 공식 정책과 체계적 교육, 거버넌스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흐름을 겹쳐 보면 지형이 선명해집니다. 개인은 빠르지만 흩어져 있고, 대형 로펌은 느렸지만 이제 체계로 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태평양의 전사 도입은 후자의 신호탄입니다. 개인이 각자 챗봇을 여닫는 사이, 상대는 900명이 같은 인프라 위에서 자체 데이터를 학습시키며 표준화된 품질을 만들어 갑니다.

그렇다면 개인 변호사가 태평양을 흉내 낼 수는 없어도, 그 전략의 '원리'는 그대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첫째, AI를 가끔 쓰는 보조 도구가 아니라 매일 켜는 기본 업무 환경으로 정의할 것. 둘째, 흩어진 서면·상담·사건 기록을 검색 가능한 형태로 정리해 '나만의 데이터'로 만들 것. 셋째, 그렇게 아낀 시간을 반복 업무가 아니라 판단과 전략, 그리고 의뢰인 응대에 재배치할 것.

태평양이 밝힌 도입의 목적도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이준기 대표변호사는 "이번 전사 도입의 목적은 기술이 아니라 고객가치"라며 "반복적이고 방대한 업무를 AI가 맡는 만큼 전문가들은 전략과 판단에 집중해 고객에게 더욱 신속하고 정교한 자문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쟁의 축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AI를 쓰느냐'는 이미 지난 질문입니다. 이제는 아낀 시간을 어디에 쓰고, 어떤 데이터를 쌓아두느냐가 변호사의 실력을 가릅니다. 900개의 계정이 켜진 그날, 개인 변호사에게 남겨진 것은 위기감이 아니라 준비할 시간입니다. 아직은.

#리걸AI#하비#태평양#로펌AI도입#변호사경쟁력

작성자

macdee 에디터

macdee 개발팀과 법률 마케팅 전문가가 작성한 인사이트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