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가짜 판례에 과태료 500만원: 변호사가 잃는 건 돈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서면에 담았다가 적발되는 사건이 한국 법정에서 잇따르고 있다. 국회는 과태료 법안을, 법원은 변협 징계 의뢰를 꺼내들었다. 검증 의무가 곧 변호사 신뢰의 새 경계선이 됐다.
법정에서 인용한 판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무너지는 것은 변론 하나가 아닙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의 근거인 '신뢰' 자체가 흔들립니다. 그리고 이 일이 이제 한국 법정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 지방 소재 법원 형사 재판부는 A 변호사가 제출한 의견서에 인용된 판결 5개를 법원 전산망에서 조회한 결과, 해당 판결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A 변호사는 다음 기일이 열리기 전 문제가 된 판례를 철회한다는 의견서를 냈지만, 재판부가 공판에서 출처를 묻자 'AI를 사용했다'고 인정했습니다.
AI 환각 현상이 만든, 존재하지 않는 가짜 판례를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제출했다가 발각된 것입니다.
국내 법원에서 이런 사례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고, 그 사이 비슷한 일이 여러 건 쌓였습니다.
국회가 '과태료 500만원' 카드를 꺼냈다
이제는 규제의 영역으로 넘어왔습니다.
최근 국회에서는 소송서류에 조작된 판례 인용이 담기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이성윤 의원은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조작된 판례나 존재하지 않는 사건번호를 인용한 소송서류를 제출한 원고·대리인·변호사에게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제안했습니다.
기존에도 위조된 증거를 제출하는 행위는 무고나 사기 등 현행 형사 조항으로 처벌할 수 있었지만, 존재하지 않는 판례나 사건번호가 담긴 소송서류 자체를 제재할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었습니다.
이 빈틈을 메우려는 움직임입니다. 배경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법률 문서를 작성할 때 AI를 점점 더 많이 쓰면서, 이런 오류가 변호사 없이 진행되는 소송뿐 아니라 실제 변호사가 작성한 서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됩니다.
숫자만 보면 500만원은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비용은 다른 데 있습니다.
법원은 이미 '징계 의뢰'까지 준비를 마쳤다
과태료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법원입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판사와 변호사로 구성된 전담 조직을 통해 대응 방안을 마련했고, 그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앞으로 소송 당사자나 대리인이 AI를 활용해 허위 법령 등을 인용함으로써 불필요한 소송비용을 발생시키거나 소송을 지연시킨 경우, 재판부는 소송비용의 전부나 일부를 당사자에게 부담시킬 수 있습니다. 또 허위 법령이나 판례가 인용된 서면은 변론에서 진술이 제한되고, 판결문에 해당 내용이 허위임이 기재될 수 있습니다.
가장 무거운 대목은 여기입니다.
특히 변호사가 AI 생성 자료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인용할 경우, 재판부가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를 의뢰할 수도 있습니다.
방향도 이미 정해졌습니다.
법원과 당국은 AI 활용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되, 정확성 입증 책임은 제출 당사자에게 있다는 입장입니다.
법원행정처는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해 소송서류에 AI를 사용했음을 고지하고, 서면 제출자가 내용의 정확도를 검증해야 한다는 조항을 명시할 계획입니다.
AI를 썼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그 결과를 검증하지 않은 채 법정에 낸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책임의 무게는 더 확장될 수 있습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허위 소송서류의 책임 주체가 변호사라는 것을 명문화해 신중한 검토를 요구해야 한다며, 이것이 변호사에 대한 의뢰인의 손해배상책임 논의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태료 한 건으로 끝나지 않고, 의뢰인과의 분쟁으로 번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검증 능력'이 새로운 마케팅 포인트가 된다
이 흐름을 리스크로만 읽으면 절반만 본 것입니다. 시장의 다른 쪽에서는 정반대의 압력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의뢰인이 먼저 AI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법정 풍경이 바뀌고 있습니다.
변호사 없이 10대 딸의 대리인으로 법정에 선 50대 여성은 "AI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액 민사사건은 변호사 비용이라는 '배꼽'이 소송으로 얻는 이익인 '배'보다 커지는 경우가 많고, AI 활용도가 커지면서 이런 '나홀로 소송'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AI가 진입장벽을 낮춘 만큼, 저가 사건에서 변호사의 자리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의뢰인은 잘못된 정보를 들고 변호사를 찾아옵니다. 현장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AI를 통해 얻은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이런 판결이 있던데요"라고 묻는 의뢰인이 늘었고, "AI와 싸우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만큼 부작용이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토로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변호사의 차별점이 선명해집니다. 값싸게 초안을 뽑는 능력은 이미 의뢰인 손에도 있습니다. 시장이 돈을 지불하는 것은 그 초안이 진짜인지 가려내는 판단력, 즉 검증 역량입니다. 마케팅 메시지도 여기서 다시 짜야 합니다. "AI를 잘 씁니다"가 아니라 "AI가 만든 오류까지 걸러냅니다"가 신뢰의 언어가 됩니다.
실무적으로 준비할 지점은 세 갈래입니다. 첫째, 사무소 내부에 인용 판례·법령의 존부를 반드시 재확인하는 검증 프로세스를 명문화하는 일입니다. 법원은 이미
사법정보공개포털을 통해 AI가 제시한 사건번호가 실제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허위 사건번호 확인'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도구는 갖춰졌으니, 남은 것은 습관입니다.
둘째, 홈페이지와 상담 콘텐츠에서 '검증된 답변'을 브랜드 자산으로 내세우는 일입니다. 의뢰인이 ChatGPT 답변을 들고 오는 시대에, 그 답을 교정해 주는 전문가의 무게감은 그 자체로 수임의 근거가 됩니다. 셋째, AI 활용 사실을 숨기기보다 '검증 절차를 거친다'는 사실을 투명하게 알리는 편이 규제 방향과도 일치합니다. 고지 의무가 규칙으로 들어오는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과태료 500만원은 표면입니다. 진짜로 걸린 것은 징계 이력이 남는 순간 회복이 어려운 평판, 그리고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기대하는 마지막 방어선입니다. AI가 초안을 대신 쓰는 시대일수록, 변호사의 이름값은 '무엇을 썼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걸러냈는가'에서 나옵니다.
작성자
macdee 에디터
macdee 개발팀과 법률 마케팅 전문가가 작성한 인사이트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