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갚으라고 했을 뿐인데 사기 피의자로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면, 무혐의 통지를 받은 뒤에도 억울함이 쉽게 가라앉지 않죠. 그 지인을 무고죄로 고소하는 일 자체는 가능합니다. 다만 무혐의 결정 하나로 무고가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지인이 고소장에 쓴 사실이 거짓이었고, 지인이 그것을 거짓인 줄 알면서 썼다는 점이 따로 드러나야 무고가 됩니다.
빌려 간 돈을 갚으라고 했더니 지인이 오히려 저를 사기로 고소했고, 무혐의가 나왔습니다. 이제 그 사람을 무고죄로 고소할 수 있나요?
01 무혐의와 무고의 거리
무혐의와 무고는 같은 고소를 두고 서로 다른 사람을 심사한 결론입니다. 무혐의는 나를 사기로 처벌할 증거가 모이지 않았다는 판단입니다. 무고는 지인이 거짓을 지어내 신고했다는 판단입니다.
법원은 무고죄의 허위사실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고소 내용이 진실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내용을 허위라고 단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경찰도 무혐의라고 했으니 거짓 고소"라는 주장은 무고 수사의 출발점일 뿐입니다.
무혐의는 내가 처벌받지 않는다는 결론이고, 무고는 지인이 거짓을 지어냈다는 별도의 결론입니다.
무혐의 통지서가 곧바로 무고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니, 맥이 빠지는 대목입니다.
형법 제156조는 타인에게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나 공무원에게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사람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지인이 경찰에 낸 사기 고소가 이 조문의 신고에 해당합니다. 판례가 정리해 온 요건에 대 보면 쟁점이 좁혀집니다.
02 불송치 결정의 두 갈래
내 사안이 어디쯤 있는지 가늠할 첫 단서는 불송치 결정의 종류입니다. 불송치 결정은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넘기지 않고 끝내는 결정을 말합니다. 경찰의 '혐의없음'은 다시 '범죄인정안됨'과 '증거불충분'으로 나뉘거든요.
통지서를 받고 '혐의없음'이라는 말만 몇 번이고 다시 읽은 분도 있을 겁니다. 무고를 생각한다면 그 혐의없음이 둘 가운데 어느 쪽인지가 더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통지서만으로 알기 어렵다면, 피의자였던 사람도 불송치 사건 기록의 열람·복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증거불충분은 고소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가려지지 않았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서로 말이 엇갈리는데 이를 확인할 자료가 없을 때 흔히 이 결론이 나옵니다. 이 결론만 들고 무고로 고소하면 앞에서 본 적극적 증명의 벽에 그대로 부딪힙니다.
범죄인정안됨은 다시 나눠 봐야 합니다. 지인이 주장한 사실이 아예 없었다고 수사기관이 판단했다면, 허위를 증명하는 데 한 걸음 다가섭니다. 반대로 지인이 적은 사실을 모두 진실로 가정해도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면 무고 역시 성립하지 않습니다. 처벌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거짓이 섞여도 형사처분의 위험이 생기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03 허위와 과장의 경계
같은 무혐의라도 지인이 고소장에 무엇을 썼느냐에 따라 무고 여부가 갈립니다. 기준은 지인이 직접 겪어 알 수밖에 없는 사실을 거짓으로 적었느냐입니다.
가령 지인이 고소장에 "500만 원은 이미 다 갚았는데 같은 돈을 또 받아 내려 한다"고 썼다고 해 봅시다. 실제로는 한 푼도 갚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고소 한 달 전에 지인이 "아직 못 갚아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갚았는지는 지인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일이라 착각이었다고 말하기 어렵죠.
이번에는 지인이 실제로 오간 송금과 대화를 그대로 적었다고 해 봅시다. 거기에 "이자를 핑계로 원금보다 많이 받아 가려 했으니 사기"라는 해석만 붙였다면 무고가 되기 어렵습니다. 법원은 사실을 바탕으로 정황을 다소 과장했거나 법률적 평가를 잘못한 데 그친 고소를 허위사실 신고로 보지 않습니다.
무고의 기준은 지인이 직접 겪어 알 수밖에 없는 사실을 거짓으로 적었는지입니다.
억울함의 크기와 무고의 성립은 이렇게 따로 움직입니다.
역할을 바꿔 보면 경계가 더 또렷해집니다. 돈을 빌려주고 못 받은 사람이 빌려 간 사람을 사기로 고소했다가 무혐의가 난 경우는 대개 무고가 되지 않습니다. 돈을 건넨 사실은 진실이고, '처음부터 갚을 생각이 없었다'는 부분은 고소인의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무혐의로 끝났어도 다툼이 사실이 아니라 평가에 있었으므로 무고와는 거리가 멉니다.
04 고소인의 반격과 자백
무고 고소장이 접수되면 지인은 대개 원래 사건을 다시 열거나, 진실이라고 믿었다고 버팁니다. 불송치 결정은 확정판결처럼 굳는 결론이 아니어서 원래 사건을 다시 여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45조의7에 따라 고소인은 경찰관서의 장에게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법에 정한 신청 기한은 없습니다.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경찰은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해야 하므로, 무고 고소가 계기가 되어 원래 사건을 검찰이 다시 검토하기도 합니다.
무고 수사에서 지인은 대부분 '몰랐다'는 쪽으로 방어합니다. 이미 갚은 줄 알았다거나, 차용증이 다른 돈에 관한 것인 줄 알았다는 식인데요. 이런 항변을 꺾는 것은 지인이 고소 전에 남긴 말과 행동입니다.
지인이 허위였다고 자백하면 형을 줄이거나 면제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형법 제157조는 위증죄의 자백 규정인 제153조를 무고죄에도 적용합니다. 그래서 신고한 사건의 재판이나 징계처분이 확정되기 전에 자백하거나 자수하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합니다.
무고가 인정되더라도 지인의 처벌이 가벼워질 수 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또 무고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처벌하는 죄입니다. 합의해서 고소를 취소해도 수사는 이어집니다.
05 손해배상의 낮은 문턱
무고가 인정되지 않아도 지인에게 민사상 책임을 물을 길은 남습니다. 근거는 고의나 과실로 남에게 손해를 입히면 배상하게 하는 민법 제750조입니다.
법원은 고소인이 상대에게 범죄 혐의가 없다는 것을 알았거나 과실로 알지 못한 채 고소했다면 불법행위가 된다고 봅니다. 과실은 고소 당시 혐의를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로 따집니다. 허위라는 인식까지 요구하는 무고보다 문턱이 한 칸 낮은 셈이죠. 다만 무혐의가 났다는 사정만으로 과실이 곧바로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이 소송에서는 주로 조사를 받으며 겪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다툽니다. 무고 유죄 판결이 나온다면 그 판결이 지인의 고의를 보여 주는 유력한 자료가 될 겁니다. 빌려 간 돈을 돌려받는 일은 이와 별개로 대여금 반환 청구로 다툽니다.
06 무고 고소의 시기와 시효
무고죄는 친고죄가 아니어서 6개월의 고소기간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친고죄는 피해자가 고소해야만 처벌할 수 있는 죄입니다. 무고죄에서 따질 기한은 검사가 재판에 넘길 수 있는 기간인 공소시효입니다.
무고죄의 법정형 상한은 징역 10년이므로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3호에 따라 공소시효는 10년입니다. 이 기간은 지인의 고소장이 수사기관에 접수된 때부터 셉니다.
무고 수사는 원래 사건의 고소 내용이 허위였는지를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원래 사건이 이의신청으로 다시 열리면, 수사기관은 그 결론을 지켜본 뒤 무고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둘러 고소해도 결론이 앞당겨지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통화나 대면으로만 돈 이야기를 나눴고 남은 것이 송금 내역뿐이라면, 지인이 고소 당시 무엇을 알았는지 보여 줄 자료가 마땅치 않습니다. 이런 사안에서는 무고 고소도 원래 사건처럼 증거불충분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무고로 고소했다가 지인이 혐의없음을 받으면, 이번에는 내가 무고가 되는 걸까요? 같은 법리가 나에게도 적용됩니다. 내가 겪은 사실을 그대로 적었다면 지인이 혐의없음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메시지를 고치거나 없던 대화를 지어 넣었다면 그때는 내 고소가 무고가 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무혐의만으로는 무고가 되지 않습니다. 지인이 스스로 아는 사실을 거짓으로 적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고, 무고죄의 공소시효는 10년입니다.
지인이 사기 고소를 하기 전까지 보낸 메시지를 거슬러 올라가, 지인 스스로 빚을 인정한 문장이 있는지 하나만 확인해 보세요. 무고에서 가장 넘기 어려운 쟁점은 지인이 고소 당시 무엇을 알고 있었느냐입니다. 그것을 가장 직접 보여 주는 것은 지인이 직접 남긴 말입니다. 그런 문장이 끝내 없다면, 그 사실도 이 사건을 가늠하는 단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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