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주먹이 한 번 나갔습니다. 며칠 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고, 상대 쪽은 합의금으로 큰 금액을 불러왔습니다. 폭행 합의금에 법이 정한 표는 없지만 판단 기준은 분명합니다. 요구액을 '합의하지 않았을 때 내가 치를 값'과 나란히 놓는 것이고, 그 값은 사건이 폭행으로 남느냐 상해로 바뀌느냐에서 크게 갈립니다.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 상대를 때렸고 폭행으로 신고됐습니다. 상대가 큰 합의금을 부르는데, 적정한 금액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01 진단서가 가른 두 결말
합의서가 사건을 끝내는지는 죄명이 정합니다. 같은 술자리, 같은 주먹 한 번을 두 갈래로 가정해 보겠습니다. 첫째 사건에서 상대는 병원에 가지 않았고 사건은 폭행으로 접수됩니다. 이 사건은 상대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면, 곧 처벌불원서를 수사기관에 내는 순간 끝납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반의사불벌죄라고 부릅니다. 형법 제260조 제1항은 폭행을 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로 처벌합니다. 같은 조 제3항은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재판에 넘길) 수 없다고 정합니다. 단순 폭행이 바로 이 범죄여서, 처벌불원서가 들어오면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넘기지 않는 불송치로,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닫습니다.
둘째 사건에서 상대는 다음 날 전치 2주 진단서를 냅니다. 죄명은 상해(경우에 따라 폭행치상)로 바뀌고, 형법 제257조 제1항에 따라 법정형도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올라갑니다. 상해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므로 합의서가 있어도 검사는 기소할 수 있습니다. 이때 합의는 재판에 넘기지 않는 기소유예나 벌금 감액을 이끄는 사정으로 작동할 뿐입니다.
두 사건의 차이는 주먹의 세기가 아니라 상해가 인정되느냐에 있습니다. 법원은 저절로 낫고 일상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상처라면 진단서가 있어도 상해로 보지 않기도 합니다. 반대로 맥주병처럼 위험한 물건을 들었다면 상처가 없어도 형법 제261조의 특수폭행이 됩니다. 이 경우에도 합의로 사건이 끝나지 않습니다.
합의서 한 장이 사건을 끝내느냐, 형을 줄이느냐의 차이입니다.
단순 폭행은 처벌불원서 한 장으로 사건이 끝나지만, 상해로 바뀌면 합의해도 기소될 수 있습니다.
02 합의금을 이루는 세 부분
합의금은 한 덩어리처럼 보여도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치료비·약값·쉰 날의 수입·깨진 물건값 같은 실제 손해,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그리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의 값입니다. 앞의 둘은 민사소송으로도 받을 수 있지만, 마지막 하나는 형사합의에서만 생깁니다.
숫자를 넣어 보면 이렇습니다. 치료비 30만 원, 이틀 쉰 일당 15만 원씩 30만 원, 깨진 안경 20만 원이라면 실제 손해는 80만 원입니다. 상대가 1,000만 원을 불렀다면 나머지 920만 원은 위자료와 처벌불원의 값이 섞인 금액이 됩니다.
막연하던 숫자가 이렇게 쪼개지면, 협상할 대목이 어디인지가 보입니다.
920만 원이 적정한지는 합의하지 않았을 때 떠안는 것들과 견주어 판단합니다. 합의가 없으면 벌금형 가능성과 그 기록, 그리고 따로 남는 민사 배상 책임을 함께 집니다. 벌금은 국가에 내는 돈이라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와는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폭행 벌금 상한이 500만 원이니 합의금도 그 아래여야 한다'는 계산은 절반만 맞습니다. 비교할 대상은 벌금 하나가 아니라 벌금, 민사 배상, 기록을 더한 값입니다.
03 높은 요구액의 배경
단순 폭행에서 피해자가 큰 금액을 부르는 것은 사건의 결말을 그 사람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금액은 대개 신고 직후 감정이 가장 격할 때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정되곤 합니다. 경찰은 피해자 동의 없이 연락처를 알려 주지 않으므로, 보통 수사관을 거쳐 합의 의사가 전해진 뒤 대화가 시작됩니다.
지금 상대가 보낸 금액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열어 통장 잔액과 견주고 계실 겁니다. 그 문자에 '안 되면 진단서를 끊겠다'는 말이 있다면, 첫째 사건을 둘째 사건으로 넘기겠다는 압박입니다. 다만 한참 뒤 발급받은 진단서라면 수사기관과 법원은 진단 시점과 경위를 따져 신빙성을 봅니다.
상대도 나를 밀치거나 때렸다면 계산이 달라집니다. 서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쌍방폭행에서는 각자 처벌불원서를 주고받는 맞합의가 흔하고, 오가는 돈은 누가 더 다쳤느냐로 조정됩니다.
피해자가 금액과 상관없이 처벌을 원한다고 못박으면 위 계산법은 쓸 곳이 없습니다. 기소된 뒤라면 돈을 법원에 맡기는 형사공탁이 남습니다. 2022년 12월부터는 피해자 인적사항을 몰라도 공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공탁은 처벌불원이 아니어서, 단순 폭행이라도 사건을 끝내지 못하고 형을 정할 때 참작될 뿐입니다.
04 합의서의 필수 문구
합의서에서 결론을 바꾸는 문장은 셋입니다.
1. 처벌불원: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선처를 바란다'는 말만으로는 처벌불원으로 읽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2. 청구 포기의 범위: 합의금 외에 이 사건으로 인한 민·형사상 청구를 더 하지 않는다는 문장.
3. 지급과 제출의 순서: 금액, 지급일, 계좌를 적고 '지급 확인 즉시 처벌불원서를 수사기관에 제출한다'고 정합니다.
첫째 문장이 빠지면 합의금을 주고도 사건이 끝나지 않습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 명시됐는지, 그것이 피해자 본인의 진정한 의사인지를 봅니다. 그래서 사건 일시와 장소를 적어 사건을 특정합니다. 피해자 본인이 직접 서명하며, 신분증 사본도 붙여 둡니다.
둘째 문장에도 경계가 있습니다. 법원은 합의 당시 예상할 수 없었던 후유증이 뒤늦게 생기면 그 손해까지 포기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합의 시점에 알려진 피해 내용을 적어 두면 포기의 범위가 분명해집니다.
05 처벌불원의 시한
처벌불원서는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 내야 사건을 끝냅니다.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1항이 고소 취소를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로 정합니다. 같은 조 제3항은 이 규정을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 희망을 거두는 경우에도 준용합니다. 단계별 효과는 이렇습니다.
1. 경찰 조사: 신고 뒤 첫 조사까지 사건에 따라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고, 이때 처벌불원서가 들어가면 불송치로 끝납니다. 합의서를 써 두고도 수사기관에 내지 않아 사건이 그대로 송치되는 실수가 흔합니다.
2. 검찰 단계에서 들어가면 공소권 없음 불기소입니다.
3. 1심 재판 중이라면 판결 선고 전까지 내면 되고,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6호에 따라 공소기각 판결을 합니다.
4. 1심 판결 뒤 항소심에서 낸 처벌불원서는 사건을 끝내지 못하고 형량을 정할 때의 참작 사유에 그칩니다.
합의서를 써 준 상대가 나중에 마음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2항과 제3항에 따라, 한 번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피해자는 다시 처벌을 구할 수 없습니다. 이 규칙 때문에 피해자 쪽은 돈부터 받으려 하고, 분할 지급이면 마지막 회차까지 처벌불원서를 미루려 합니다. 먼저 써 주면 남는 것이 잔금에 대한 민사 청구뿐이니, 무리한 요구는 아닙니다.
실제로는 이체를 확인한 그 자리에서 처벌불원서 원본을 받는 방식이 흔히 쓰입니다.
처벌불원서는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 내야 사건을 끝냅니다. 합의서를 써 두고 수사기관에 내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06 합의 이후의 기록
처벌불원으로 끝난 폭행 사건은 범죄경력자료, 흔히 말하는 전과에 남지 않습니다. 수사를 받은 사실은 수사경력자료로 일정 기간 보관되지만, 조회할 수 있는 경우가 법으로 좁게 정해져 있습니다.
상해로 넘어간 사건은 결과에 따라 기록이 갈립니다. 합의를 참작해 기소유예가 나오면 전과는 남지 않습니다. 벌금형이 확정되면 그때부터 범죄경력자료에 올라갑니다. 상해 사건에서 합의가 가르는 것은 결국 이 한 줄의 기록입니다.
청구 포기 문장 없이 처벌불원만 받았다면, 피해자는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안에 민사로 더 청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766조 제1항).
정리하면, 합의금은 실제 손해와 위자료, 처벌불원의 값으로 나눠 보고 합의하지 않았을 때의 벌금·민사 배상·기록과 견줘 판단합니다. 합의서에는 처벌불원 문구를 꼭 넣으세요.
상대가 부른 금액보다 먼저 볼 것은 내 사건의 죄명 한 단어입니다. 경찰에서 연락받을 때 들은 죄명이 폭행인지 상해인지, 출석요구 문자나 통화 메모를 다시 열어 확인해 보세요. 그 한 단어가 합의서의 성격을 정합니다. 사건을 끝내는 문서인지 형을 줄이는 문서인지가 갈리고, 요구액을 무엇과 견줄지도 거기서 출발합니다.
062-223-7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