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 김모 씨(가명)는 어느 날 통장에 찍힌 270만 원을 보고 어리둥절했습니다. 보낸 사람도 모르고, 받을 이유도 없는 돈이었습니다. 혹시 잘못 들어온 건가 싶어 며칠 두고 보다가, 마침 급한 카드값이 있어 일부를 썼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 계좌가 갑자기 지급정지되었습니다. 은행에 전화하니 '사기 피해금 신고가 접수되어 막혔다'는 답이 돌아왔고, 곧이어 모르는 번호로 '내 돈 내놔라, 안 그러면 사기죄로 고소하겠다'는 협박 문자가 쏟아졌습니다. 며칠 뒤에는 경찰서에서 출석요구서가 날아왔습니다. 죄목은 사기방조 또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보이스피싱 조직의 인출·전달책으로 의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담을 받을 때마다 의뢰인들께서 똑같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억울함만으로는 수사기관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억울한데 왜 피의자가 되는가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해자가 송금한 돈이 거쳐 간 계좌의 명의인은 거의 예외 없이 수사선상에 오릅니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해당 계좌의 지급정지를 신청하고, 그 계좌 주인을 공범으로 지목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 갈리는 핵심은 '고의'입니다. 보이스피싱 방조죄가 성립하려면 '내 계좌가 범죄에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았거나, 적어도 그럴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묵인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모르는 돈이 들어온 사실만으로 처벌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함정도 있습니다. 들어온 돈을 인출하거나 송금하거나 써버린 경우, 수사기관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출처 불명의 돈을 그렇게 쉽게 쓰겠느냐'며 미필적 고의를 의심합니다. 모르고 쓴 돈이라도 횡령 문제가 별도로 따라붙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몰랐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모름이 합리적이었다는 점을 증거로 보여주는 일이 승부처가 됩니다.
무죄를 끌어내는 실제 방어 포인트
제가 실무에서 무혐의나 무죄를 이끌어낼 때 집중하는 지점은 분명합니다.
첫째, 계좌나 접근매체를 타인에게 넘긴 사실이 없다는 점입니다. 통장, 카드, 비밀번호를 양도했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 거의 그대로 성립하지만, 본인이 계속 정상적으로 쓰던 계좌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둘째, 돈이 들어온 경위와 그 직후의 행동입니다. 입금 즉시 은행이나 경찰에 문의했는지, 함부로 쓰지 않고 보관했는지, 아르바이트나 거래를 빙자한 유인에 속은 정황이 있는지를 통화내역, 메신저 대화, 구직 사이트 기록으로 복원합니다. 만일 고수익 알바라며 계좌를 빌려달라거나 돈을 대신 받아 보내달라는 제안에 넘어간 피해형 가담자라면, 본인 역시 기망당한 피해자라는 구조까지 입증해야 합니다.
지급정지에 대해서는 이의신청 절차가 있습니다. 본인이 사기와 무관함을 소명하면 지급정지를 풀 수 있는데, 이때 제출하는 소명자료가 곧 형사사건의 진술과 직결됩니다. 따라서 지급정지를 풀기 위해 즉흥적으로 해명하다 오히려 불리한 진술을 남기지 않도록 신중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첫 진술이 결과를 거의 결정합니다
혼자 대응하다 일을 그르치는 가장 흔한 지점이 바로 경찰 첫 조사입니다. 억울한 마음에 말이 많아지고, 기억이 흐릿한 부분까지 단정해서 답하다 보면 앞뒤가 안 맞는 진술이 만들어집니다. 수사기관은 그 불일치를 고의의 증거로 봅니다. 한 번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는 나중에 뒤집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시간도 촉박합니다. 통상 출석요구서에는 지정된 출석일이 적혀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하면 체포영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협박 문자에 겁을 먹어 상대에게 돈을 보내면, 그 송금이 또 다른 범죄에 쓰여 피해를 키우고 본인 책임만 무거워질 수 있으므로 절대로 임의로 합의금을 보내지 마십시오.
상담하러 오실 때는 이것만 챙겨 오시면 됩니다. 계좌 입출금 내역, 지급정지 안내 문자나 은행 통지서, 출석요구서, 그리고 돈이 들어오기 전후의 문자·메신저 대화입니다. 이 자료만 있으면 사건이 단순 명의대여인지, 피해형 가담인지, 정말 무관한 경우인지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저는 조사 전에 예상 질문을 함께 정리하고, 진술 방향을 잡은 뒤 필요하면 변호인 의견서를 수사 초기에 제출합니다. 억울함은 감정이 아니라 증거와 진술의 일관성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출석일이 정해져 있다면, 그 전에 한 번이라도 상담하고 들어가는 것과 그냥 들어가는 것은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통장에 모르는 돈이 들어왔고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망설이지 말고 지금 연락 주십시오. 빠를수록 지킬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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