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상담을 받고 있었다: 변호사 사칭 사이트 31곳이 닫힌 날
사칭범이 훔치는 것은 변호사의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이 검색 결과에서 쌓아온 신뢰입니다. 서울변회 접수 건수는 3년 만에 25배로 늘었습니다. 온라인 평판 방어가 왜 마케팅의 일이 됐는지 짚습니다.
이번 달 초, 대한변호사협회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와 공조해 변호사 사칭 피싱 사이트 31건의 접속차단을 이끌어냈다고 밝혔습니다. 심의를 요청한 건 가운데 증거 불충분으로 각하된 3건을 제외한 전부입니다. 적용된 근거는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과 변호사법 제112조. 단순 사기 사이트가 아니라 '변호사 아닌 자의 변호사 행세'로 인정됐다는 뜻입니다.
주목할 대목은 차단 건수가 아니라 그 사이트들이 무엇을 베꼈는가입니다. 변협에 따르면 실제로 등록된 변호사의 성명과 사진, 약력을 그대로 도용해 정식 법률사무소인 것처럼 위장한 사례가 다수 신고됐습니다. 없는 변호사를 지어낸 게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이미 신뢰받는 변호사의 프로필을 통째로 복사했습니다.
3년 만에 25배로 늘어난 신고
서울지방변호사회 직역수호센터에 접수된 '비변호사의 법률행위 및 변호사 사칭' 사건은 2022년 7건이었습니다. 2023년 22건, 2024년 43건, 그리고 2025년에는 177건으로 뛰었습니다. 전년 대비 약 4배, 3년 전과 비교하면 약 25배입니다. 고발 건수의 곡선은 더 가파릅니다. 2022년 2건, 2023년 2건, 2024년 3건이던 것이 2025년 31건이 됐습니다.
수법도 조악한 단계를 지났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유령 법무법인'의 홈페이지를 운영하거나, 변호사 신분증과 명함을 위조한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SNS에서는 실존 변호사의 얼굴 사진과 소속, 경력, 심지어 실제 연락처까지 프로필에 그대로 걸어둔 계정이 돌아다닙니다. 당사자가 자기 사칭 계정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본인의 진짜 계정을 미리 차단해두는 경우까지 보고됐습니다.
돈을 뜯는 방식은 오히려 소박해 보이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무료 상담으로 심리적 문턱을 낮춘 뒤, 조사비나 수사비 명목으로 수십만 원 단위의 소액을 요구합니다. 변호사 보수는 원래 비싸다는 통념을 역이용해, 감당할 만한 금액을 반복 청구하며 의심을 피하는 구조입니다. 이미 당한 피해자에게 다시 접근해 "피해금을 회수해주겠다"며 추가 비용을 받아내는 2차 범죄도 확인됐습니다.
사칭범이 훔치는 건 이름이 아니라 '검색 결과'다
왜 하필 실존 변호사일까요. 답은 마케팅에 있습니다.
가짜 법률사무소가 처음부터 신뢰를 쌓으려면 몇 년이 걸립니다. 프로필, 사건 후기, 언론 인용, 블로그 축적, 검색 노출까지. 그런데 이미 그 작업을 끝낸 변호사의 이름과 사진을 가져다 붙이면, 잠재 의뢰인이 검색창에 그 이름을 넣었을 때 나오는 결과가 알리바이가 됩니다. 사칭범은 변호사의 신원이 아니라 변호사가 수년간 광고비와 시간을 들여 만든 온라인 신뢰 자산을 훔치는 셈입니다.
법률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더 냉정합니다. 이혼, 형사, 채권추심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검색하는 사람은 진위 검증에 쓸 여유가 없습니다. 한 로펌 관계자는 사칭 홈페이지가 자세히 보면 허술하지만 일반인이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대형 로펌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몇 달에 걸쳐 홈페이지에 사칭 주의 팝업을 띄웠습니다. 그 팝업 자체가 이미 방어 비용입니다.
여기에 한 겹이 더 있습니다. 검색과 AI 답변은 텍스트와 구조를 읽지, 발급된 자격을 읽지 않습니다. 원본 프로필이 얇고 갱신이 뜸한데 복제본이 더 두껍고 더 자주 업데이트된다면, 기계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실체 있는 문서'로 보일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콘텐츠를 방치한 변호사일수록 자기 이름의 검색 지분을 남에게 내주기 쉽다는 뜻입니다.
방어는 법무가 아니라 마케팅의 업무다
사칭 대응을 '법적 조치'로만 두면 늘 사후 처리에 머뭅니다. 계정 하나를 삭제시켜도 다른 계정이 곧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실효 있는 방어는 평소의 채널 운영에서 나옵니다.
첫째, 자기 이름과 사무소명을 정기적으로 직접 검색해봐야 합니다. 월 1회, 이름·사무소명·대표 사건 키워드를 검색엔진과 SNS에서 확인하는 습관만으로 대부분의 사칭은 초기에 걸러집니다. 둘째, 공식 채널을 하나로 좁혀 명시해야 합니다. 홈페이지·대표번호·공식 계정·수임료 입금 계좌 명의를 한 페이지에 정리해두면, 의뢰인이 진위를 대조할 기준점이 생깁니다. 셋째, 변협이 권고한 대로 정식 등록 변호사 여부를 교차 확인할 수 있는 경로를 의뢰인에게 먼저 안내하는 편이 낫습니다. 상담 신청 페이지 하단의 한 줄이 사칭범을 막는 문턱이 됩니다.
넷째, 사칭을 발견했다면 플랫폼 신고로 끝내지 말고 소속 지방변호사회와 변협에 접수해야 합니다. 이번 31건 차단은 개별 신고가 모여 심의 대상이 됐기에 가능했습니다. 변협은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어떤 사이트가 누구를 도용했는지는 결국 당사자가 가장 먼저 압니다.
가장 근본적인 방어는 원본을 두껍게 만드는 일입니다. 갱신되는 칼럼, 실제 사건 경험이 드러나는 글, 얼굴과 목소리가 담긴 콘텐츠. 복제하기 어려운 밀도를 쌓아둔 변호사의 이름은 훔쳐가도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반대로 이름과 약력 몇 줄뿐인 프로필은 복사 한 번이면 끝입니다.
사칭 사기의 급증은 역설적으로 한 가지를 증명합니다. 변호사의 이름에는 돈이 됩니다. 범죄자가 훔쳐서 쓸 만큼의 가치가 그 이름에 붙어 있습니다. 그 가치를 누가 관리하고 있는지, 오늘 자기 이름을 검색창에 넣어보면 30초 만에 확인됩니다.
Written by
macdee 에디터
MAKETHIS1 편집팀이 작성하는 법률 마케팅 인사이트입니다. 기자·방송작가 출신이 쓰고, 법학 전공자가 법률 표현을 검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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