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JTBC 드라마 「아파트」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178억 원에 달하는 장기수선충당금을 빼돌리기 위해 관리사무소장의 직인과 통장을 확보하는 과정이 그려졌습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외벽 도색과 방수, 승강기·배관 교체 등 아파트 주요 시설을 장기간에 걸쳐 보수하기 위해 소유자들이 매달 적립하는 돈입니다. 드라마처럼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나 관리소장이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는 일반 운영비가 아닙니다.
최근 대구에서도 장기수선충당금 집행과 관리비 정산을 둘러싼 소송과 형사고소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3억여 원 규모의 외벽 보수·재도장 공사를 두고 입찰 절차 등에 문제가 제기됐고, 다른 아파트에서는 16억 원 규모의 주차장 도장 공사를 둘러싸고 입주민과 입주자대표회의가 갈등을 빚었습니다.
드라마 속 설정으로만 치부하기에는 현실에서도 관련 분쟁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입주자대표회의가 입주민에게 알리지 않고 장기수선충당금을 사용했다면, 입주민은 그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장기수선충당금 사용에 매번 입주민 동의가 필요한지, 용도와 절차를 위반해 사용한 돈을 누구에게 청구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입주민에게 알리지 않고 사용하면 모두 불법일까요?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관리주체는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장기수선충당금 사용계획서를 작성하고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을 거쳐 사용해야 합니다. 사용계획서에는 수선공사의 명칭과 내용, 공사 기간, 공사 방법, 공사 범위와 예정 금액, 자금조달 방법 등이 포함돼야 합니다.
따라서 기존 장기수선계획에 포함된 승강기 교체나 외벽 도색을 계획된 시기에 시행하고, 사용계획서 작성과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거쳤다면 모든 소유자에게 별도의 동의를 받지 않았더라도 적법하게 집행될 수 있습니다.
반면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부적정한 사용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수선계획에 없는 시설을 새로 설치하기 위해 계획을 예정보다 일찍 조정하려면 전체 입주자 과반수의 서면동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자진단·감정이나 관련 분쟁조정 비용 등 법에서 정한 예외적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에도 입주자 과반수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부당하게 사용한 장기수선충당금은 입주민이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용도와 절차를 위반해 장기수선충당금이 빠져나갔다면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반환을 통해 회수할 수 있습니다. 다만 회수된 돈을 각 입주민에게 현금으로 나눠주는 것은 아닙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아파트 주요 시설을 수선하기 위해 별도로 적립하는 공동관리 자금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입주자대표회의 등이 책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빠져나간 금액을 장기수선충당금 계좌로 되돌려 놓는 방식이 됩니다.
청구 상대방은 돈이 사용된 과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나 관리소장이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실제로 돈을 가져간 사람이 우선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관리업체가 허위 정산이나 과다 지급을 통해 이익을 얻었다면 관리업체를 상대로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들이 지출을 적극적으로 결의하거나 방치했다면 고의·과실과 관여 정도에 따라 공동책임이 문제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절차를 어겼다고 해서 지출액 전부가 항상 손해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획에 없는 공사였지만 실제로 아파트 전체에 필요했고 그만큼 재산상 이익이 남았다면, 법원은 아파트가 얻은 이익을 손해액에서 공제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공사 자체가 허위이거나 공사비가 부풀려졌다면 실제 지출액과 적정 공사비의 차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반환청구 전에는 통장에서 빠져나간 금액뿐 아니라 실제로 시행된 공사의 가치와 아파트에 남은 이익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임의로 사용했다면 입주자대표회장에게 횡령죄도 성립할까요?
장기수선충당금을 개인 계좌로 옮기거나 개인 채무 변제에 사용했다면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큽니다. 허위 계약서나 세금계산서를 만들어 공사업체와 돈을 나눠 가진 경우에는 배임이나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도 함께 문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수선계획과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언제나 횡령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재물을 위탁 목적에 반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처분하려는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돼야 합니다.
대법원은 특별수선충당금을 계획과 다른 용도로 사용한 사건에서, 그 돈이 아파트의 구조진단과 하자소송 비용에 사용됐고 입주민들의 포괄적인 동의가 있었던 사정 등을 고려해 횡령의 고의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형사상 횡령이 무혐의라고 해서 사용 절차가 적법해지거나 민사상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장기수선충당금을 법정 용도 외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형사상 횡령 여부, 공동주택관리법 위반 여부, 민사상 반환책임은 각각 나누어 판단해야 합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이 사라진 것 같다면 어떤 자료부터 확인해야 할까요?
먼저 소문이나 관리비 고지서의 숫자만으로 횡령을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적법하게 공사가 시행돼 잔액이 줄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입주민은 우선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에서 장기수선충당금 적립액과 사용액, 공사·용역 입찰 및 계약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다음 자료를 서로 대조해 봐야 합니다.
자료를 확인한 결과 계획에 없는 지출이나 허위 공사, 과다 지급 정황이 발견된다면 관할 구청에 공동주택관리 관련 민원이나 감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미 통장 인출과 사적 사용 정황이 확인됐다면 관련 자료가 삭제되기 전에 민사상 가압류와 손해배상청구, 형사고소의 필요성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특히 일부 입주민이 납부한 몫만 계산해 개인적으로 돌려달라고 청구하거나, 문제 된 금액만큼 관리비 납부를 임의로 거부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가 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와 회수된 돈이 어디로 귀속돼야 하는지를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이 입주민 모르게 사용됐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횡령이나 전액 반환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용계획과 의결 절차, 실제 사용처, 아파트에 남은 이익을 확인한 뒤 빠져나간 돈을 공동관리 자금으로 회복할 방법을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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