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같은 브랜드 간판을 단 병원 두 곳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본원은 A원장이, 지점은 B원장이 각각 개설했고 두 사람은 브랜드 사용료와 공동 마케팅비를 나눕니다. 개원 직후 두 원장은 주요 시술 가격표를 똑같이 맞추고, 전화 상담이 들어오면 먼저 받은 쪽이 끝까지 진료하며 서로 예약을 넘기지 않기로 정했습니다. 간판이 하나니 당연한 정리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은 이 두 병원을 남남으로 봅니다. 브랜드가 같다는 사실은 담합 판단에서 거의 힘을 쓰지 못하고, 결론은 두 병원이 법적으로 하나의 사업자인지, 그리고 가격이나 환자 배분에 관한 합의가 있었는지 여부가 핵심입니다.
같은 브랜드인데도 별개 사업자로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부당한 공동행위, 흔히 담합이라 부르는 행위는 둘 이상의 사업자가 경쟁을 제한하는 합의를 할 때 성립합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0조 제1항이 가격 결정부터 거래지역·거래상대방 제한까지 금지 유형을 열거하는데, 이 조항의 전제가 '둘 이상의 사업자'입니다. 두 병원이 하나의 사업자로 묶이면 논의는 시작되기도 전에 끝납니다.
문제는 의료법이 그 묶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의료법 제33조 제8항은 의료인이 어떤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도록 정합니다. 네트워크 병원이 지점마다 다른 원장을 개설자로 두는 구조를 택하는 이유가 여기 있죠. 그 결과 각 지점은 독립한 개설자이고, 손익도 각자 계산하는 별개 사업자가 됩니다.
공정거래 실무에서는 지분관계나 실질적 지배를 통해 사실상 하나의 사업자로 볼 수 있는 경우 그들 사이의 합의를 원칙적으로 문제 삼지 않습니다. 완전 모자회사 사이의 가격 협의가 담합이 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반면 네트워크 병원은 지분이 아니라 상표 사용과 경영 지원 계약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간판은 하나여도 사업자는 둘입니다.
의료법인이 두 곳을 운영하는 경우라면 결론이 달라지는가
같은 상권에 두 곳을 열었더라도 개설 주체가 하나면 담합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의료법인이 직접 본원과 분원을 개설해 운영한다면 두 병원은 한 사업자의 두 사업장이고, 가격을 어떻게 정하든 합의의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겉모습이 비슷해서 자기 사안을 착각하기 쉬운 지점이 여기입니다. 브랜드만 공유하고 개설자가 각각인 구조와, 하나의 법인이 두 곳을 개설한 구조는 간판이 동일해도 법적 평가가 정반대입니다. 상담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도 각 지점의 개설신고증에 적힌 개설자가 누구인지입니다.
경영지원회사에 업무를 위탁한 구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탁만으로 여러 병원이 하나의 사업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경영지원회사가 여러 병원의 가격을 취합해 조정했다면 그 조정을 매개한 행위 자체가 별도로 문제가 됩니다.
가격표를 맞춘 사실만으로 합의를 인정하는가
합의는 계약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서로 맞추자는 의사가 오갔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충분하고, 원장들의 메신저 대화나 협의회 회의록, 공유 가격표 파일이 그대로 증거가 됩니다. 반대로 임대료와 인건비가 비슷해 가격이 저절로 수렴한 경우는 합의가 아닙니다.
이 구분을 두고 제40조 제5항의 추정 규정이 작동합니다. 행위의 외형이 일치하고 그에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은 사정 등이 인정되면 합의가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추정이 되면 '우연히 같았다'는 설명을 병원 쪽이 해내야 합니다. 인상 시점과 인상률이 소수점까지 같은 경우가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정황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원장 단체 대화방을 거슬러 올라가고 계실 수 있습니다. 그 대화방에서 실제로 위험한 문장은 "가격 올리자"보다 "그쪽은 얼마 받으세요"입니다. 향후 가격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은 기록은 추정의 발판이 되거든요.
환자를 서로 넘기지 않기로 한 약속은 어느 조항에 걸리는가
가격보다 무거운 쪽은 환자 배분입니다. 제40조 제1항 제4호는 거래지역이나 거래상대방을 제한하는 합의를 금지합니다. 상권을 나누고 상담 환자를 서로 넘기지 않기로 한 약속은 전형적인 시장분할이고, 시장분할 합의는 가격 합의보다 경쟁제한 효과가 뚜렷하다고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트워크 내부 규약에 '지점 간 상권 침범 금지' 조항이 들어 있으면 그 문서가 곧 합의의 증거입니다. 브랜드 본부나 원장 협의회가 이를 정해 각 병원에 따르도록 했다면 제51조 제1항의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문제로도 번집니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상권 보호 약정은 네트워크 확장 단계에서 가장 흔히 쓰이면서 가장 방치되는 조항입니다.
문제가 되면 병원이 실제로 부담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정명령과 과징금이 먼저, 형사처벌과 환자·경쟁 병원의 손해배상 청구가 뒤따릅니다. 제43조에 따른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20% 범위에서 부과되고, 매출액 산정이 어려우면 40억원 이내의 정액과징금이 가능합니다. 2020년 전부개정으로 상한이 종전 10%에서 두 배로 올랐습니다.
다만 상한이 곧 실제 액수는 아닙니다. 산정은 관련 매출액에 위반행위 중대성에 따른 부과기준율을 적용한 뒤 가중·감경을 거칩니다. 합의 대상 시술의 연 매출이 5억원이고 합의가 2년 이어졌다면 관련 매출액 자체가 10억원대로 잡히므로, 시술 한두 종목이라도 금액이 작지 않습니다.
형사처벌은 제124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한편 제44조는 자진신고자에 대한 감면을 정하고 있고, 요건을 갖춘 1순위 신고자는 과징금과 시정조치를 면제받습니다. 합의에 가담한 병원이 여럿일 때 먼저 움직인 쪽에 유리하게 설계된 제도라는 뜻입니다. 처분시효는 위반행위가 끝난 날부터 7년입니다.
지금은 움직이지 않고 지켜보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는가
합의를 뒷받침할 문서가 없고 가격이 결과적으로 비슷해진 단계라면, 급하게 손대는 쪽이 불리합니다. 갑자기 '가격은 각 병원이 자율 결정한다'는 공문을 돌리거나 과거 회의록을 다시 정리하는 행동은 그전까지 합의가 있었다는 정황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조사 개시 통지도 신고 조짐도 없다면, 앞으로의 가격과 환자 안내를 각 병원이 독립적으로 결정하도록 실무만 바꾸고 과거 자료는 그대로 두는 편이 낫습니다. 반대로 조사 개시 통지를 받았거나 경쟁 병원과 분쟁이 시작된 상태라면 판단 기준이 완전히 달라지고, 자진신고 순위를 포함해 시간을 다투는 선택이 생깁니다.
여기까지의 설명은 각 지점에 서로 다른 개설자가 있는 구조를 전제로 합니다. 개설 주체가 하나이거나 지분으로 지배관계가 확인되는 구조라면 담합 성립 자체가 부정될 수 있어, 같은 사실관계라도 답이 반대로 나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
지금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원장 단체 대화방과 협의회 안내문에서 '단가', '가격 통일', '상권', '환자 이동'이라는 말이 오간 대목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 확인해 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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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일 2026년 9월 21일 작성 · 이후 법령이 개정되면 이 글을 갱신합니다.
작성 오승준 대표 변호사 · 법무법인 액시스 (구 BHSN) · 취급 분야: 공정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