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변호사 채용이 멈췄다: AI가 지운 건 '자리'가 아니라 '경력의 사다리'
매출은 두 자릿수로 늘었는데 신입 변호사 채용은 제자리입니다. AI가 신입 업무를 흡수하면서 '경력의 사다리' 자체가 압축되고 있습니다. 중소형 로펌과 개업 변호사에게 이 변화가 던지는 신호를 읽습니다.
매출은 늘었는데 신입은 뽑지 않습니다. 올해 채용 시장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그리고 이 어긋남의 한가운데에 AI가 있습니다.
2026년 국내 10대 대형 로펌의 신입 변호사 채용 규모는 244명으로, 2025년의 274명에 비해 30명(-10.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5년 이들 로펌의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10% 이상 성장한 것에 비하면 이례적입니다.
매출이 두 자릿수로 뛰는 해에 신입만 줄어드는 그림은, 과거의 '호황=대량 채용'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입니다.
서류 검토가 사라진 자리에서 시작된 변화
원인을 묻는 질문에 로펌들은 비슷한 답을 내놓습니다.
AI가 기본적인 법률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하면서 생명과학·의학, IT 분야 등에서 사전 경험을 갖춘 지원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졌고, 유관 경험의 중요성이 커진 흐름이 경력직 영입 확대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입니다.
한 신문의 별도 분석은 조금 다른 숫자를 내놓았지만 방향은 같습니다.
10개 주요 로펌의 2026년 신입 채용 인원은 총 234명으로 전년(227명)보다 3.1% 늘었습니다.
대형 로펌 상단은 소폭 늘거나 정체지만, 문제는 그 아래입니다.
서류 검토, 계약서 분석 등 신입 변호사들이 주로 맡던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중소형 로펌 채용이 급격히 위축되고, 기업들 역시 경력 있는 사내변호사를 선호하면서 신입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습니다.
갈 곳을 잃은 새내기들이 몰리는 곳도 뚜렷합니다.
지난해 대한변협 실무연수 신청자는 574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핵심은 '신입이 줄었다'가 아니라 '신입에게 배정되던 일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서류 검토, 계약서 분석, 판례 리서치. 이 반복 업무들은 신입 변호사에게 월급을 주는 명분이자, 동시에 그들이 실력을 쌓던 훈련장이었습니다. AI가 그 업무를 흡수하면 자리보다 먼저 훈련의 기회가 사라집니다.
미국에서 먼저 벌어진 일
같은 장면이 미국에서는 더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SurePoint의 2026 로스쿨 채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신입 어소시에이트 채용은 4년째 사실상 정체 상태이며, 이는 AmLaw 200 로펌들이 큰 성장을 겪은 시기와 겹칩니다.
채용의 무게추는 경력직으로 옮겨갔습니다.
지난해 AmLaw 200에서 경력직 어소시에이트가 전체 어소시에이트 채용의 51%를 차지해, 5년 중 세 번째로 경력직이 로스쿨 신규 졸업자를 앞질렀습니다.
이유는 국내와 판박이입니다.
로펌들이 AI 관련 경험을 가진 변호사를 채용하려 전담팀을 꾸리고 있고, AI의 영향력 확대가 경력직 선호 추세의 주된 배경이라는 분석입니다.
업무 대체는 조직 규모 조정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문서 집약적이고 리서치 중심이던 주니어 어소시에이트 업무가 AI에 흡수되는 가운데, 베이커 맥킨지는 2026년 2월 600~1,000개의 비즈니스 서비스 직무를 감축했습니다.
가장 뼈아픈 진단은 '자리'가 아니라 '사다리'를 향합니다.
문서 검토·리서치·실사 등 초기 경력 변호사를 가르치던 업무를 AI가 걷어내면서, AI 산출물을 감독할 수는 있어도 오류를 잡아내거나 근본부터 판단력을 기르는 법을 배우지 못한 변호사가 양산될 위험이 지적됩니다.
스탠퍼드 로스쿨의 한 교수는 이를 두고, 로펌들이 소속 변호사의 지식을 추출해 AI 워크플로에 이식하며
'더 적은 수의 인간 변호사만 필요한 세계'를 준비하는 쪽으로 파트너십 경로 자체가 실시간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사다리가 압축될 때, 시장의 중간이 비어간다
이 변화가 무서운 이유는 시차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신입을 대량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10년 뒤의 중견 변호사 층이 조용히 얇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밑단으로 진입하는 사람이 줄면 10년 뒤 시니어 변호사도 줄어드는, 구조적으로 압축된 경력 파이프라인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일자리를 뺏긴다'와는 다른 종류의 위험입니다.
국내 사정은 여기에 공급 과잉이 겹칩니다.
매년 1,700여 명의 신입 변호사가 배출되고 등록 변호사가 3만 6천 명에 육박한 가운데, 변호사시험 합격 직후 취업난에 직면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대신 진로의 물길은 조직 밖으로 넓어졌습니다.
로스쿨 도입 이후 변호사의 공공·기업 진출 비율은 13.1%에서 18.9%로 뛰었고, 2011년 570명이던 한국사내변호사회 회원은 지난해 말 약 2,800명으로 늘었습니다.
정리하면 시장은 양극으로 벌어집니다. 위로는 AI 역량과 즉시 투입 가능한 경력을 갖춘 소수가 '모셔가기'의 대상이 되고, 아래로는 훈련장을 잃은 다수가 개업과 소형 사무소, 사내로 흩어집니다. 그리고 흩어진 다수야말로 macdee가 매일 마주하는 독자입니다.
개업·소형 로펌이 붙잡아야 할 세 가지
첫째, 경력의 사다리가 사라진 자리를 '전문성의 깃발'로 대체해야 합니다. 대형 로펌이 유관 경험자를 우대하는 논리는 개업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모든 사건을 다 한다'는 프로필은 AI 시대에 가장 약한 신호입니다. 의료·IT·건설 같은 좁고 뚜렷한 분야 하나를, 검색과 AI 추천 양쪽에서 인식되도록 콘텐츠로 반복해 각인시키는 편이 훨씬 강력합니다.
둘째, AI가 신입의 반복 업무를 가져간 만큼, 개업 변호사도 그 도구를 마케팅·상담 응대의 지렛대로 삼아야 합니다. 대형 로펌이 사내 지식을 AI 워크플로로 이식하는 동안, 1인·소형 사무소가 같은 방식으로 격차를 좁힐 지점은 '실무 자동화'와 '초기 응대'입니다. 문의가 들어온 순간의 속도와 정확성이, 조직 규모를 덜 중요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무기입니다.
셋째, '사람이 판단한다'는 신뢰를 전면에 세워야 합니다. AI가 산출물을 감독만 할 뿐 판단력을 못 기른 변호사를 양산할 위험이 지적되는 지금, 역설적으로 시장에서 가장 희소해지는 자산은 검증된 판단력입니다. 이력, 처리 사건의 결, 실제 응대의 태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프로필은 그 희소성을 눈에 보이게 만듭니다.
채용 숫자의 정체는 로펌 인사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입에게 배정되던 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그 일을 '가격표 붙여 팔던' 시장의 하단이 통째로 재편된다는 뜻입니다. 사다리가 압축되는 시대에 개업 변호사가 지킬 것은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대체되는 업무가 아니라, 대체되지 않는 판단을 보이게 만드는 일입니다.
작성자
macdee 에디터
macdee 개발팀과 법률 마케팅 전문가가 작성한 인사이트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