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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동향

구글이 로펌과 '나홀로 소송'을 같은 선에 꽂았다: 법률 AI가 넘은 경계

구글이 법률 업무 전용 AI 플랫폼을 내놨습니다. 연동 파트너 목록에는 대형 로펌이 쓰는 문서관리 시스템과 함께, 변호사 없이 소송하는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이 나란히 올라 있습니다. 이 목록이 한국 변호사에게 던지는 질문은 도구가 아니라 위치에 관한 것입니다.

구글 클라우드가 8월 25일(현지시간) 법률 업무 전용 AI 플랫폼 '제미나이 엔터프라이즈 포 리걸(Gemini Enterprise for Legal)'을 공개했습니다. 프리뷰 단계이고, 첫 고객으로 클리어리 가틀립, 프레시필즈, 웨일, 윌리엄스앤코널리의 법무 조직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같은 날 금융 서비스용 버전도 함께 나왔습니다. 구글은 이번 발표를 산업별 특화 솔루션 시리즈의 '첫 번째'라고 설명했습니다. 법률이 1번 타자였다는 뜻입니다.

기능 목록은 익숙하면서도 낯섭니다. 계약 검토와 레드라이닝, 법률 리서치, 규제 변화 추적, 정보주체 열람청구 대응, 법률 플레이북 작성, NDA 초안. 여기까지는 이미 시장에 있는 기능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법원 제출 문서 준비와 비공개 처리 — 민감 정보와 개인식별정보를 자동으로 골라내 실무자가 확인만 하면 되도록 만드는 작업까지 들어갔습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구글은 이 에이전트들이 '사람의 상당한 관리감독 없이도' 전문화된 법률·행정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표현이 조심스럽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진짜 뉴스는 기능이 아니라 파트너 목록에 있습니다

플랫폼은 네 겹으로 짜여 있습니다. 법률 업무를 단계별로 안내하는 특화 스킬, 기존 법률 시스템에 붙는 보안 커넥터, 외부 리걸테크의 에이전트, 그리고 IT·리스크 부서가 결과물과 접근 권한을 통제하는 거버넌스 층입니다. 연동 대상으로 공개된 이름들이 흥미롭습니다. 아이매니지와 넷도큐먼츠 같은 문서관리 시스템, 도큐사인, 에버로와 릴러티비티원 같은 e디스커버리, 톰슨로이터, 그리고 하비와 레고라.

여기까지는 '대형 로펌의 책상'입니다. 그런데 같은 목록에 두 개의 이름이 더 있습니다. 무료 판례 데이터베이스인 프리로프로젝트의 코트리스너, 그리고 코트룸5(Courtroom5). 코트룸5는 2017년부터 미국 민사소송에서 변호사 없이 스스로 소송을 진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를 만들어 온 회사입니다. 올해 4월에는 나홀로 소송 당사자를 위한 구조화된 프로그램을 새로 내놨습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세계 최대 로펌이 쓰는 문서관리 시스템과,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 쓰는 플랫폼이, 같은 AI 인프라의 커넥터 목록에 나란히 올라갔습니다. 구글은 이걸 굳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의뢰인 쪽에서 오는 압력이 먼저 도착합니다

기술보다 빨리 움직이는 건 돈을 내는 쪽입니다. 딜로이트가 올해 4~5월 전 세계 시니어 법무 리더 121명을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법무 부서의 79%가 전년 대비 AI 투자를 늘렸고 예산을 늘린 곳의 증가폭은 평균 67%였습니다. 61%가 이미 도입 단계에 들어섰고, 10%는 일상 업무 전반에 AI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답했습니다. AI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응답은 2%. 2024년의 76%와 비교하면 2년 만에 뒤집힌 숫자입니다.

이 조사에서 변호사가 가장 무겁게 읽어야 할 항목은 따로 있습니다. 법무 리더의 78%가 외부 법률 서비스 제공자의 AI 활용에서 기대하는 첫 번째 편익으로 '비용 절감'을 꼽았습니다. 로펌이 AI로 빨라지면 그 이득을 누가 가져가느냐는 질문에, 의뢰인은 이미 답을 정해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딜로이트는 법무 부서가 향후 2~3년 안에 업무의 4분의 1 이상을 자동화하거나 내부에서 처리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고, 다수의 법무 리더가 로펌의 가격 책정 방식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국내 대형 로펌의 움직임도 같은 흐름 위에 있습니다. 태평양은 하비에 이어 챗GPT 엔터프라이즈를 전사 도입했고, 율촌은 폐쇄형 법률 AI를, 세종은 하비를 해외 자문 업무부터 적용하고 있습니다. 김앤장은 AI 번역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도구 경쟁은 이미 시작됐고, 구글의 이번 발표는 그 경쟁의 바닥에 깔리는 인프라 쪽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개인 변호사·중소 로펌이 볼 지점은 '도구'가 아닙니다

프리뷰 단계의 미국발 엔터프라이즈 제품을 한국의 5인 로펌이 당장 켜 볼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남의 집 이야기'로 넘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발표에서 실제로 옮겨 오는 건 세 가지입니다.

첫째, 비용 이야기가 협상 테이블에 먼저 올라옵니다. 기업 법무팀이 AI로 내부 처리량을 늘리면, 외부 로펌에 남는 일은 줄어들거나 단가 압박을 받습니다. 자문 비중이 있는 사무소라면 '우리가 무엇을 더 빨리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대신 판단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문서와 데이터를 어디에 쌓아 왔는지가 격차를 만듭니다. 이번 연동에서 넷도큐먼츠는 사건 이력, 이전 작업물, 의뢰인 관계, 판례, 거버넌스 정보를 하나로 엮은 '법률 컨텍스트 그래프'를 내세웠습니다. 문서 원본은 저장소 밖으로 나가지 않고, AI가 그 맥락 위에서 추론하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일반적인 프롬프트는 그럴듯한 초안을 만들지만, 쓸 만한 결과물은 그 조직이 실제로 다뤄 온 사건에서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사건기록이 개인 PC와 메신저와 종이 파일에 흩어져 있는 사무소는, 어떤 AI를 사도 이 층을 만들 수 없습니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의뢰인이 변호사를 찾는 경로가 이미 바뀌었습니다. 올해 6월 법률신문이 주최한 행사에서는 소비자가 포털 검색 상단을 비교하는 대신 AI에게 먼저 묻고, AI가 신뢰할 만하다고 본 곳을 찾아가는 흐름이 지적됐습니다. 네이버 통합검색에서 블로그 노출 기회 자체가 크게 줄었고, 블로그에 의존해 온 로펌들이 온라인 문의 감소를 체감하고 있다는 진단도 함께 나왔습니다. 순위를 올리는 마케팅에서, AI 답변에 인용되는 정보원이 되는 마케팅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겁니다.

이 세 번째가 첫 번째, 두 번째와 만나는 지점이 이번 뉴스의 핵심입니다. 구글은 검색과 AI 답변이라는 '의뢰인이 변호사를 만나는 입구'를 이미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계약 검토부터 법원 제출 문서까지, 변호사가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대'에도 같은 이름을 올렸습니다. 입구와 작업대가 한 사업자의 인프라 위에 놓이는 중입니다. 그 인프라의 커넥터 목록에 나홀로 소송 플랫폼이 함께 꽂혀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기능 확장이 아니라 시장 경계에 관한 선언에 가깝습니다.

정형화된 서면 작성과 정보 제공만으로 값을 매겨 온 영역은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눌립니다. 위에서는 의뢰인의 법무팀이, 아래에서는 변호사를 쓰지 않기로 한 당사자가 같은 종류의 도구를 손에 쥡니다. 남는 자리는 판단, 책임, 그리고 사건의 결과를 함께 지는 관계입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사무소가 다뤄 온 사건 유형과 처리 과정을 검색 가능한 형태로 정리해 두는 것, 홈페이지 글을 순위가 아니라 인용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 상담 단계에서 AI가 이미 알려 준 정보 위에 무엇을 더 얹을지 미리 준비해 두는 것. 구글이 어제 공개한 건 대형 로펌용 제품이지만, 그 발표가 앞당긴 시계는 모든 사무소의 벽에 똑같이 걸려 있습니다.

#법률AI#제미나이#리걸테크#로펌 마케팅#변호사 AI

Written by

macdee 에디터

MAKETHIS1 편집팀이 작성하는 법률 마케팅 인사이트입니다. 기자·방송작가 출신이 쓰고, 법학 전공자가 법률 표현을 검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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